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3개의 비준 절차 착수를 공식 발표하고 사실상 비준 절차에 들어갔다. 그간의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을 전격적으로 바꾼 것이다. 국내 법규의 정비도 없이 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됐을 때의 혼선과 후유증을 어떻게 하려고 국회로 공을 넘긴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10개월간 집중적으로 논의했지만 노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불이익 등을 이유로 대는 모양이다. 책임 회피다.
고용부가 국회로 넘기려는 비준안에는 국내 법규 의 사전 개정이 없으면 큰 혼란이 불을 보듯 환한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협약이 비준되면 실업자나 해고자도 노조 결성과 파업을 할 수 있으며, 법외노조 판결을 받은 전교조도 합법화의 길이 열린다. 사실상 모든 노동행위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노조도 설립과 운영에 제약이 없어진다.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게 돼 있는 지금 법도 협약 위반 사항이다. 또 발전소 등 국가 기간시설에서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파업이 이뤄지면 필수 인원으로 가동 중단을 막는 필수유지업무제도 또한 협약에선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사 관계 현실이나 관습과 상충하고 기업 경영에도 악영향을 줄 사안들이다. 특수형태 근로자들의 노조 활동도 향후 기술발전 동향에 따라 신중히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이 협약 비준에 앞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 ‘기업할 권리’도 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도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아직 비준되지 않은 ILO 핵심 협약들은 이른 시일 내 비준하는 게 옳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고용부가 주도권을 쥐고 단결권 확대를 원하는 노동계와 단체행동권 제약을 원하는 재계의 입장을 조정하는 게 원칙이고 순서다. 비준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이를 무기로 노동계 입맛에 맞게 국내 법규를 고치는 게 민노총의 구상이며 정부도 이를 알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듯하다. 그러니 이번 조치를 놓고 민노총의 세력 확장을 도울, 노동계에 주는 정부의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사설] 정부의 ILO 협약 비준안 제출 무책임하다
입력 2019-05-23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