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초정리에 있는 초정약수는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세종은 지병인 안질(眼疾)을 고치기 위해 즉위 26년(1444년) 청주목 초수리(지금의 초정리)를 찾았다. 이곳에 행궁(왕이 본궁 밖으로 나가 머무는 임시 궁궐)을 짓고 121일간 머물며 초정약수로 눈병을 치료했다.
세종은 초정에서 치료만 한 게 아니었다. 당시는 훈민정음 반포(1446년)를 앞둔 상황에서 신하들의 반대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다. 세종실록(즉위 26년 2월 20일)에 기록된 최만리 상소에는 ‘언문 같은 것은 급하고 부득이하게 기한에 마쳐야 하는 것도 아니온데, 어찌 이것만은 행재(초정행궁)에서 급급하게 하시어’란 대목이 나온다. 세종이 초정행궁에서 한글 창제 마무리 작업에 몰두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초정행궁은 초정리 어딘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훈민정음 반포 후 2년 뒤인 1448년 불이 나 사라졌다.
세종 외 세조도 이곳의 약수로 심한 피부병을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초수(초정약수)는 청주의 동쪽 39리에 있으며 그 맛이 후추와 같다. 이 물에 목욕하면 몸의 병이 낫는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청주시는 이 일대를 관광 명소로 꾸미기 위해 오는 12월까지 국비 47억5000만원 등 165억원을 들여 세종대왕이 머물렀던 초정 행궁을 재현한다. 전체 3만8006㎡ 부지에 초정행궁은 연면적 2055㎡ 규모로 재현된다.
진입·행궁·숙박·공원 등 4개 영역으로 나눠 조성된다. 진입 영역에는 광장과 안내센터, 어가를 전시하는 사복청, 무기를 전시하는 사장청이 조성되고 행궁 영역에는 야외 족욕체험이 가능한 원탕 행각, 탕실, 침전, 편전, 왕자방, 수라간, 전통찻집, 집현전이 들어선다. 숙박 영역에는 관람객이 이용할 수 있는 전통 한옥 6동 12실이 건립되며 공원 영역은 산책로와 연못, 축제공간으로 꾸며진다. 시는 올 연말까지 공사를 마치고 2020년 6월 개방할 계획이다. 5월 현재 공정률은 74%이다.
왕이 치료에 사용했을 정도로 수백년 동안 사랑받고 있는 초정약수는 미국의 샤스터 광천, 독일의 아폴리나리스 광천과 함께 세계 3대 광천의 하나로 미네랄이 다량 함유된 천연탄산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검사를 통해서도 세계적인 광천수로 인정받은 바 있다.
초정 광천수는 지하 100m의 석회암 층에서 솟아나는 탄산수로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고혈압, 당뇨, 위장병, 피부병, 안질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충북대병원 피부과 김미경 교수팀은 비임상, 임상시험을 통해 초정온천욕을 이용한 아토피 피부염 관리요법이 아토피 피부염의 중증도를 감소시킨다는 결과를 입증하기도 했다.
시는 초정약수와 세종대왕이 3개월간 머물면서 안질을 치료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은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제13회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축제는 오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3일간 내수읍 초정리 초정문화공원 일원에서 ‘세종, 행궁에 들다’라는 주제로 화려하게 펼쳐진다. 1444년 세종대왕이 머물던 당시의 풍경을 축제장 곳곳에 재현한다. 청주시가 주최하고 청주문화원이 주관하는 이번 축제는 초정약수와 위대한 성군 세종대왕의 다양한 이야기를 축제 콘텐츠로 개발해 교훈과 즐거움이 있는 전국 단위 문화관광축제로 만들 계획이다.
최고 볼거리인 세종대왕 어가행차 재현 행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청주 성안길과 행사장에서 진행한다. 세종이 한양을 떠나 초정리에 도착하는 모습을 재현한다. 축제 둘째 날인 6월 1일 오후 2시와 5시20분 두 차례에 걸쳐 초정리 일대 500m 구간에서 펼쳐지는 어가행렬 재현행사는 대학생 등이 호위무사, 신하, 궁녀, 장군 등으로 출연한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전국 공모를 통해 선발한다.
올해 중 완공될 초정행궁을 가상현실(VR)로 체험 가능하도록 한 초정행궁 홍보관은 당시 초수리의 풍경을 재현해 조선시대 분위기를 연출한다. 옹기·산초나무 젓가락 만들기, 천연 염색, 사군자 부채 그리기, 어린이 가마 등의 저잣거리 체험과 훈민정음 목판·능화판·옛 책 만들기 등의 집현전 체험, 초정약수를 주제로 한 초정주막, 수라간 등도 운영한다. 지역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행궁과 약수 이야기를 초정리 사람들이란 제목의 스토리 북 형태로 제작한다.
무더위 쉼터와 어린이 초정약수 물놀이장, 민속악기 호드기 체험, 신기한 종이접기 체험, 신나는 전래놀이 등 어린이 프로그램도 가득하다. 축제장 인근에 주차장을 조성하고 셔틀버스도 운영한다. 셔틀버스는 매일 정오부터 오후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매시 정각에 청주체육관, 고속버스터미널, 청주문화원에서 각각 축제장으로 출발하는 시내버스 임시노선(3개 노선)을 운행할 계획이다.
한범덕 청주시장은 “조선 르네상스를 실천한 세종대왕을 본받아 창조정신의 위대함과 애민정신을 계승할 계획”이라며 “세계 3대 광천수 초정약수의 브랜드 가치를 널리 알리고 시민과 함께 공감·공유·향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데 축제의 의의가 있다”고 소개했다. 한 시장은 이어 “초정행궁 조성에 따른 지속가능한 문화관광 프로그램 중심의 행사로 만들 예정”이라며 “축제장 곳곳에선 지역 대학생과 연극인들이 생동감 넘치는 조선시대 캐릭터를 연기해 유쾌한 웃음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