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지역구도 타파·국민통합·타협의 정치’ 역설

입력 2019-05-22 04:02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23일 돌아온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사와 각종 연설, 특강을 통해 한반도 평화, 지역구도 타파와 국민통합,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요약되는 ‘노무현 정신’을 남겼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반도 평화는 진전이 있었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서거 10년이 지났지만 ‘노무현 정신’은 아직 널리 퍼지지 못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취임사에서 “동북아 시대를 열자면 먼저 한반도에 평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돼야 한다”고 했고, 2007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도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고 남북이 함께 보다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는 문재인정부 들어 크게 개선됐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의 창구는 마련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역사상 처음으로 중재했고, 남북 정상회담도 임기 초반에 세 번이나 했고 더 할 수도 있다”며 “북·미 관계가 경색돼 있긴 하지만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도 “노무현정부 때 동북아 평화번영이라는 용어를 썼고, 지금 정부가 계승하고 있다”며 “문재인정부는 노무현정부 때보다 북한을 더 이해하고 포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북핵 문제는 그대로이고 해결 방안이 더 복잡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북·미가 비핵화를 협상해야 하는 데다 대북 제재 국면이기 때문에 노무현정부 때보다 북핵 문제를 더 풀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국민통합은 참여정부의 소명’

노 전 대통령은 지역과 계층의 통합을 강조했다. 2003년 광주민주화운동 23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국민통합은 참여정부가 반드시 이뤄내야 할 역사적 소명”이라고 했다. 같은 해 4월 국회 연설에서도 “지역구도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부딪혀 싸웠던 지역구도의 문제는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이 부산·경남은 물론 대구에서도 당선됐다. 천호선 노무현재단 이사는 “지역주의는 상당히 극복됐다”며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까지 언급하면서 모색했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선거제 개편 패스트트랙까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준한 교수는 “대구에서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고, 순천에서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당선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기대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했다.

‘대화와 타협은 성공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6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금도 여야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을 야합으로 생각하는 사고가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2007년 신년 연설에서는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연정,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안팎에서 타박만 당했다. 다음 시대의 과제로 넘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지금도 대결과 갈등 구도는 그대로다. 강원국 노무현정부 청와대 연설비서관은 “대화와 타협이 안 되고 적대·대립·반목밖에 없다는 건 노 전 대통령이 가장 고민했던 문제”라며 “지금은 당시보다 상호 증오와 적개심이 더 악화됐다. (살아계셨다면) 대한민국 정치가 미래로 가는 데 있어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최창렬 교수도 “지금이 대치와 갈등이 더 심하다”며 “자유한국당은 노무현정부 당시 한나라당보다 더 냉전적 인식과 색깔론으로 일관하고 있어 문재인 대통령이 포용을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임성수 신재희 김성훈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