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대란은 ‘시한폭탄’, 쥐꼬리 기본급, 재정 조달, 요금 인상…

입력 2019-05-22 04:02
사진=김지훈 기자

버스 파업을 코앞에 두고 정부는 광역버스 준공영제 도입, 요금 인상이라는 카드로 ‘버스 대란’을 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근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서민의 발이 묶인다는 불안감을 잠재우고, 버스 서비스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산 넘어 산’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임금구조 개편, 재정 낭비 논란 해소 등 4가지다.

①낮은 기본급과 초과수당

버스 운전사들이 파업을 외친 이유는 비교적 간단하다. 오는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초과근로를 하지 못해 월급이 줄어드니 임금을 보전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의 배경에는 ‘비정상적 임금체계’가 놓여 있다.

버스 운전사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에 초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이 덕지덕지 붙은 구조다. 근로시간이 길어야 월급도 많아진다. 버스 업계는 운전을 최대한 많이 시켜 운전사 월급총액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줬다. 노선버스 업종은 그동안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구분돼 근무시간 규제도 받지 않았다. 애초에 과로에 따른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올해 7월부터 노선버스는 특례업종에서 제외된다. 주당 최대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초과근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임금체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급은 적고 수당이 많은 기형적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추후 물가 상승, 최저임금 인상 등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버스 운전사들의 임금 보전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 버스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처럼 노선버스에도 연봉제를 도입하거나, 수당 위주가 아닌 기본급 위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준공영제의 재정 낭비 논란

정부는 전국 광역버스에 준공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준공영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버스 운행 수익금을 공동관리하면서 손실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정부의 재정이 상당량 투입돼야 한다. 앞으로 정부는 준공영제 도입·운영에 따른 재정 투입 규모, 조달 방법, 효율적 운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주52시간제 및 준공영제 평균월급을 전국 모든 버스에 적용하면 약 1조3433억원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 전국의 시내버스(약 2만4000대)에도 모두 준공영제를 도입하는 걸 가정한 계산이다. 정부는 광역버스(약 2500대)에 준공영제를 도입할 계획이라 실제 재정 투입 규모는 이보다 훨씬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아직 준공영제 도입에 따라 재정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밝히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1조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면서도 구체적 재원 규모는 연구용역으로 추산한다고만 말한다.


정부 지원금을 버스 업체들이 올바르게 쓰는지 관리할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자칫 정부가 돈을 들여 버스 업체 배만 불려줄 수 있다. 기재부는 준공영제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현재 ‘서울시 준공영제 방식’은 투명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버스 노선조정 등 버스 업체의 실무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 이에 따라 개선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정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버스 업체의 회계나 인력 등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확보돼야 준공영제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③‘대광위’ 전담조직 구성

현재 광역버스 관련 사무는 지자체가 맡는다. 정부는 지자체 소관인 광역버스 업무를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로 옮겨 전담하게 할 방침이다. 그런데 대광위는 아직 조직 틀도 완성하지 못했다. 21일 대광위에 따르면 현재 공식 정원 67명 가운데 49명만 충원했다. 각 지자체에서 파견을 받아야 하는 14개 자리 중 8개는 공석이다. 인력 충원이 지지부진하면서 업무에도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광역버스 업무 이관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대광위 업무는 법적으로 광역교통계획 수립·지원 등에 한정돼 있다. 대광위가 광역버스를 전담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 뒤에는 전담부서를 구성하고 인력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대광위는 광역버스 관련 조직 확대 여부에 대해 ‘추후 검토사항’이라고만 한다. 법 개정에 2, 3년이 걸리기 때문에 조직 확대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대광위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와 대광위 정원, 조직 개편 관련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광역버스 업무의 이관이 끝나면 그때에나 정원 관련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④대중교통 ‘적정요금’ 도출

파업을 막는 과정에서 정부와 버스 업계는 요금 인상의 공감대를 확인했다. 경기도가 시내버스 요금 200원, 광역버스 요금 400원을 올리기로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실제로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의 버스 요금은 낮은 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한국의 버스 요금은 일본의 73%, 영국의 26%, 미국의 38% 수준에 불과하다.

다만 버스 요금 인상은 국민 부담 증가로 직결되기 때문에 요금을 큰 폭으로 올릴 수도 없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대중교통 서비스의 ‘적정요금’이 얼마인지를 놓고 사회적 합의를 일궈내야 한다고 본다. 정부, 업계, 국민이 적정한 수준의 버스 요금이라는 기준치를 산정해야만 ‘요금 인상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박준환 연구관은 “그동안 버스 운전사들의 낮은 임금으로 값싼 버스 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이제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로 변하고 있고, 근로시간 단축도 시행되기 때문에 기존 요금 수준으로 서비스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 요금 인상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적정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