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자치언론’ 대학 교지, 재정·인력난에 ‘역사속으로’

입력 2019-05-22 04:05
1980, 90년대 대학 교지(校誌)는 대학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치언론이었다. 교육과 노동 정치 분단·언론 등 많은 주제를 다루며 학생은 물론 시민사회와 학계 인사들의 글도 두루 실었다. 하지만 대학 언론의 큰 축을 맡아 온 교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학생들의 관심도와 효율성이 떨어지는 등 시대 변화에 따른 흐름이다.

21일 전북대에 따르면 학생대표자회의가 지난달 교지 ‘황토현’을 만들어 오던 교지편집위원회를 폐지키로 결정했다. 1973년 ‘비사벌’로 시작해 1986년 이름을 바꾼 ‘황토현’은 40년 가까이 학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전해 왔다.

1987년 발간된 ‘황토현’ 14집에는 해방선서가 실렸다. 황토현 편집실은 “뿌옇게 성에 낀 차창에 조국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조국의 첫 ‘ㅈ’자를 쓰자마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읍니다…”라는 장문의 글에서 6월 민주항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012년 12월 ‘황토현’ 71집에는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를 압박하는 상황을 강력 비판하고 학생들의 관심을 요구하는 글이 게재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교지를 만들 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못하고 학생회비 활용 문제 등이 지적돼 7년째 책자를 만들지 못했다. 급기야 ‘황토현’은 폐간사도 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건국대에서 발간되던 ‘건대교지’는 지난해 10월 퇴출됐다. 학생대표자회의는 표결로 ‘건대교지’를 중앙자치기구에서 퇴출키로 결정했다. 이후 인쇄물을 통한 교지는 사라졌고 온라인 등을 통한 작업만 이뤄지고 있다.

앞서 2014년에는 서울대 교지 ‘관악’이 창간 25년 만에 사라졌다. ‘길들여지지 않는 시대의 눈동자’를 기치로 1990년 첫선을 보인 ‘관악’은 학술문화 종합지 역할을 해 왔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1994년 9호)와 손석희 JTBC 대표(1996년 13호) 등도 기고했다. 하지만 더 이상 교지를 만들 사람이 없었고 결국 49번째 책을 끝으로 종간됐다.

성신여대의 교지 ‘성신 퍼블리카’도 재정난을 이유로 지난해 폐간됐다. 계명대는 1967년 창간한 ‘계명’의 제작을 2000년 중단했다. 비슷한 이유로 많은 대학의 교지들이 이미 폐간됐거나 폐간 위기에 처해 있다.

원용찬 전북대(경제학부) 교수는 “학생들의 관심사가 진로 등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되다 보니 자치언론에 대한 열의가 크게 떨어졌다고 본다”며 “청년들의 시대적 고민과 정신을 치열하게 대변하고 주요 담론을 담아온 매체들이 사라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