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흑인 얼굴을 형상화한 스웨터로 인종차별 비판을 받았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가 석 달 만에 종교 비하로 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미 CNN 등은 구찌가 최근 내놓은 ‘인디 풀 터번(Indy Full Turban)’이 시크교도를 비롯한 여론의 비난에 직면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구찌만이 아니라 패션업계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과거의 잘못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문제가 된 구찌의 ‘인디 풀 터번’은 시크교도들이 쓰는 터번과 디자인이 비슷하다. 파란색 헝겊으로 만들어진 이 터번의 가격은 790달러(약 94만원)이다. 시크교도연맹은 “구찌가 신앙의 상징인 터번을 가지고 돈을 벌려 한다”며 “구찌는 시크교도들이 신앙을 위해 그동안 겪은 수많은 차별과 수난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논란이 일자 해당 제품을 판매하던 미국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종교, 문화적 상징을 비하하려는 뜻은 없었다”고 사과하면서 판매를 중단했다. 구찌는 시크교도연맹의 사과 요구에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구찌는 지난 2월엔 무늬 없는 검은색 옷에 입술 모양만 붉은색으로 강조한 스웨터를 내놓았다가 흑인을 모욕하는 ‘블랙페이스’(백인 배우가 흑인을 흉내 내기 위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 논란을 일으켰다. 구찌는 흑인 연예인들이 앞다퉈 불매운동을 선언하는 등 여론이 나빠지자 그제서야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뒤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패션업계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일으킨 것은 비단 구찌만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패션 브랜드와 스타 디자이너들이 반복적으로 저질러 왔다. 지난 2월 아디다스는 ‘흑인 역사의 달’을 기념한다면서 순백의 운동화를 출시했고, SPA 브랜드 H&M은 지난해 흑인 어린이 모델에게 ‘정글에서 가장 쿨한 원숭이’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혔다.
인종차별의 대상은 흑인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지난해 중국인 여성이 젓가락으로 우스꽝스럽게 피자와 파스타를 먹는 모습의 광고를 선보였다가 중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지난 3월 뉴욕포스트는 구찌의 블랙페이스 스웨터와 관련해 패션계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를 비판하면서 “패션계는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이 없고 인종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코코샤넬, 크리스찬디올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들부터 인종차별을 내세운 나치 정권의 부역자들이었다”고 지적했다. 2011년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가 히틀러를 찬양하고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동영상이 공개돼 디올에서 쫓겨난 것이 그나마 제대로 된 징계였다. 하지만 갈리아노도 2년 뒤 다시 복귀해 활동하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