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헝가리 집권당의 총선 부정… 유럽의회 선거 직전, 극우 ‘사면초가’

입력 2019-05-21 04:07
얼굴에 유럽연합(EU)기를 그려넣은 사람들이 19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유럽을 위해’라고 적힌 커다란 천을 함께 걸친 채 행진하고 있다. 이들은 유럽 일각에서 기승을 부리는 극우주의 반대 시위를 벌였다. AP뉴시스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세력을 확장해온 극우세력이 잇따라 악재를 만났다.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오스트리아 전 부총리의 부패 동영상 파문에 이어 지난해 헝가리 총선에서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이끄는 극우정당 피데스가 광범위한 선거 부정을 저지른 것이 폭로됐다. 이번 논란으로 극우세력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지난해 4월 헝가리 총선에서 피데스가 광범위한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는 비정부기구 ‘언핵데모크라시유럽’의 보고서를 확보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피데스는 총선에서 전체 199석 중 개헌 가능 최소 의석인 133석을 확보했고 오르반 총리는 3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피데스는 총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을 단체로 실어 날랐으며 뇌물, 협박, 우편투표 조작, 투표용지 분실, 선거 소프트웨어 조작행위 등도 저질렀다.

오스트리아를 뒤집어놓은 문제의 동영상은 극우정당 자유당 소속의 슈트라헤 전 부총리가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의 조카라고 밝힌 여성에게 정치적 후원을 받는 조건으로 정부 사업권을 약속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슈트라헤 부총리는 지난 17일 전격 사임했고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한 중도우파 국민당은 연정 해산을 발표했다. 이 동영상은 유럽 각국 언론에 집중 보도돼 23~26일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극우정당들을 궁색하게 만들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주류 정치인들은 이 기회를 틈타 “선거에서 극우를 배격하자”고 유권자들에게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화답하듯 독일에선 수도 베를린과 뮌헨 등 여러 도시에서 수만명이 극단적 민족주의를 배격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번 동영상 파문으로 EU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경계감이 한층 커진 상태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 등 유럽 극우 정치인들이 러시아와 모종의 끈을 대고 있다는 우려가 증폭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을 이끄는 마린 르펜은 EU 공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에 이어 러시아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르펜은 “국민연합이 프랑스 은행의 대출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이탈리아에서 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의 러시아 방문, 독일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소속 당원들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방문한 것도 물의를 빚었다. 게다가 온라인 보안업체인 ‘세이프가드사이버’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의 공작을 폭로했다. 러시아발 뉴스들이 국가마다 표적으로 삼은 특정 정치인을 겨냥해 사실을 왜곡하고 불신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헝가리 출신 유럽의회 의원 이슈투반 우이헤이는 “이번 동영상 파문 등으로 슈트라헤 전 부총리를 시작으로 러시아의 꼭두각시인 유럽 극우정당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