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유럽 전역의 총기 추적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불법총기 유통을 차단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대규모 총기 난사를 미리 막겠다는 구상이다. 총기에 대한 애착이 유독 강한 스위스도 EU의 강력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규제를 강화했다.
스위스는 19일(현지시간) 총기 관련 규제를 EU 수준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총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투표 결과 유권자의 63.7%가 찬성표를 던졌다. 스위스 26개 지역 중 한 곳을 제외하고 찬성 여론이 우세했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니다.
개정된 총기법에 따르면 민간인은 살상력이 큰 반자동무기를 아예 소유할 수 없다. 일반 총기를 소유할 때도 의무적으로 총기를 등록해야 한다. 총기류 핵심 부품에는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총기 수집가나 사격선수들도 총기 구입 허가를 받으려면 더 많은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민투표 전에는 총기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여론도 높았다. 스위스는 스포츠사격, 수렵 등 총기 문화가 발달해 있다. 군 복무 후 예비역에게 총기 소유를 허가하는 등 총기 소지에 관대하다. 비영리기구 스몰암스서비스의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대비 총기 소지 비율이 세계 16위였다.
총기 규제 강화 근거에 대한 공감도 낮았다. 스위스에서는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발생한 적이 없다. 총기 규제 반대 진영에서는 과거 테러에 사용됐던 총기가 등록되지 않은 불법 총기였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테러 위협이 상대적으로 낮은 농촌지역에 반대여론이 집중됐다. 우발적인 총기 난사로 다수가 숨진 사건도 2001년이 마지막이었다.
EU는 이런 상황을 뒤집기 위해 스위스를 압박했다. 총기 규제 강화를 거부하면 솅겐 조약에서 퇴출하겠다고 초강수를 뒀다. 솅겐 조약은 유럽 국가 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 조약이다. 여기에서 쫓겨나면 경제적 손해가 클 수밖에 없다.
EU가 스위스 총기법 개정안 통과에 공을 들인 것은 총기 규제 시스템 때문이다. EU는 최근 유럽 전역의 총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회원국뿐 아니라 솅겐 조약에 가입한 스위스 노르웨이의 총기 정보도 공유하기로 했다. EU는 2015년 11월 프랑스 테러 이후 총기 구매와 소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당시 이슬람국가(IS) 조직원들은 파리 시내 6곳을 공격해 시민 130여명을 살해했다. 영국 독일 벨기에 등에서도 비슷한 테러로 인명 피해가 잇따랐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총기에 관대한 스위스가 ‘규제 강화’ 나선 까닭은
입력 2019-05-20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