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이 태동하던 18세기 중엽 이후 영국의 고전학파들은 정치와 경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치경제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당연히 사회현상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와 결코 분리될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한가.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의 순기능적 입법 역할은커녕 오히려 정치인들의 사욕을 포함한 막말과 망언 등을 쏟아냄으로써, 정치가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잡음(noise) 정보의 과잉을 부추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악용해 가짜 뉴스를 증폭시킬 뿐 아니라, 정상적 국회 활동을 거부하면서 경제의 정상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저개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들도 유사한 사례가 많고, 특히 현재 우리나라 여의도 정치가 바로 대표적 사례이다. 소위 패스트트랙이라는 선거법개정 등 정치 관련 입법파동으로 인해, 산적한 구조개혁 및 규제개혁 등 경제개혁 입법과 각종 대형사고의 피해 국민이 목타게 기다리는 구난기금을 위한 추가경정예산도 통과될 가능성이 난망하다. 더욱이 현재 우리 정치는 상대 정당들이 헛발질과 대형 실수 범하기를 기다려 이를 통해 반사이익만을 도모하는 것 말고는 결코 합리적 대안으로서의 입법 정치를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전혀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동시에 정치권은 오로지 내년 총선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선되고 다수당이 되는 것에만 목을 매고 있다.
이런 정치 환경 속에서 내수산업과 중소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산업구조의 정상화를 위한 재벌개혁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더욱이 실물경제를 선도하면서 양질의 서비스산업 일자리를 증대시켜야 하는 금융산업은 지배구조 개혁의 무풍지대이며, 무주공산으로서 먼저 잡는 자가 임자가 된 지 한참 됐다.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금융산업이 채용비리의 온상이 된 지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채용비리의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고, 국정농단과 채용비리에 책임을 져야 하는 CEO들이 무풍지대에서 자신들이 흡사 금융지주회사의 오너가 된 것인 양 3연임을 넘어서 4연임까지 획책하고 있는 게 곳곳에서 보인다.
금융산업의 현장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금융 정책당국과 감독 당국은 과거 적폐 정부들이 금융산업을 지배했던 슬로건인 미소금융, 녹색금융, 창조금융을 이어받아 소위 포용금융이라는 거대담론만 내세우면서 문제의 핵심인 금융지주회사 지배구조의 적폐 청산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금융 감독 당국이 수차에 걸쳐서 지배구조 모범을 만들어 시행을 권유하고, 문제 있는 지주사 회장들의 거취에 정당한 개입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금융사는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광고를 매개로 언론들과의 유착을 통한 벌떼 같은 반발을 통해 이를 좌절시켰다. 구실은 민간금융사에 대한 ‘관치금융의 개입’이라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재무부의 남대문출장소였고, 시중은행들과 증권·투신사들이 각각 재무부 이재국과 증권국의 먹잇감이던 시절에나, 금융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부당한 관치금융의 폐해’를 강력 비판 성토했던 것인데, 민주개혁 촛불 정부 시대에 와서 역으로 금융사 회장들과 언론들이 속으로는 유착 거래를 하면서 겉으로 관치금융을 비판하는 것은 양두구육과 다를 바 없다.
특히 언론의 유착 사태를 감시·비판해야 할 정치권이 관치금융 비판을 핑계로 오히려 금융 감독 당국의 팔다리를 묶어 금융사 지배구조개혁을 방해함으로써 금융회사들이 악성 정치화되는 기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속적 연임에 혈안이 된 금융지주사 회장들이 내부 임직원들을 일렬종대로 줄 세우고, 실력 있는 인재들을 양성하기는커녕 유능한 인재를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해 역차별을 감행하는 등 오늘날 금융산업은 여의도보다도 더 심각한 외딴섬 정치판이 돼가고 있다. 이제 경제는 물론 금융산업이 정상화되려면, 정치는 정경유착을 버리고 그 입도 다물고 정치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권영준 한국뉴욕주립대 경영학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