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단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석양에 물든 낭만적인 해변이나 서퍼들이 곡예 하듯 보드를 타는 역동적인 바다를 떠올릴 것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는 펄떡거리는 생업의 장으로,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생과 사의 경계가 파도처럼 넘실대는 위험한 곳으로 묘사된다. 우리 국민에게 4월 ‘그날 바다’는 뼈아픈 아픔과 반성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바다를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선박과 사람을 떠올린다. 바다 위를 오가는 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바로 선박안전기술공단(이하 공단)에 몸담고 있는 이들이다. 우리 공단은 선박의 항해와 관련한 안전을 확보하고 이에 대한 기술을 연구 개발 및 보급하는 것을 사명으로 1979년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공단은 약 9만5000척의 어선과 비어선으로 분류되는 여객선, 화물선, 유조선, 예선, 부선 등 일반선박과 레저선박을 검사한다. 세월호 사건이후 해양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2015년부터는 한국해운조합으로부터 여객선 안전운항관리업무를 인수받아 현재 100개 항로 169여척의 여객선 운항을 관리·감독한다.
공단이 7월 가슴 벅찬 대항해의 깃발을 올린다. 2017년 정유섭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해양교통안전공단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7월 1일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된 것이다. 도로 위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교통안전공단이 설립되었듯이 이를 바다에 적용해 변화하는 해양교통환경에 대응하고 해양사고 예방에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중책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 공단은 해양안전을 전담하는 대표기관으로서 전문성과 업무효율성 제고, 기술인프라 구축 및 해외경쟁력 확보 등 新 공단의 기반 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새 공단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선박의 안전을 점검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일이다. 바다 위 사람들을 돌보고, 안전한 항해를 통해 바다에서 행복과 번영을 더해갈 수 있도록 함께 삶을 만드는 일이다. 생업의 바다로 나가는 어부의 거친 손을 잡아주고, 섬 여행에 가슴 부푼 가족들의 안녕을 보장하며, 짐을 싣고 떠나는 화물선의 긴 항해길과 함께한다. “어른이 되면 큰 배를 모는 선장이 될 거야”라고 꿈을 꾸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는 일 또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이렇게 바다를 통해 사람들이 꿈을 꾸고 실현해 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일 것이다.
우리나라 해양관할권 면적은 육지의 4.5배이다. 국토를 육지에만 한정짓지 말고 해양으로까지 확장하면 그 잠재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바다는 육지만큼 활기 넘치고 역동적인 생활의 공간이다.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어부는 말할 것도 없고, 연간 1700만 명에 이르는 인원이 연안여객선으로 이동하고 낚시인구도 8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다는 우리에게 도전과 시련을 안겨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해양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바다는 위험한 곳, 일부 전문가 집단만 활동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공포와 부정은 그 대상을 잘 모를 때 커진다. 해상안전을 위해 어떤 것을 조심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알고 나면 그 두려움은 한결 줄어든다.
바다에 대한 관심과 도전 의지, 해양안전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책임의식, 바다의 도전과 위험을 기술과 안전의식으로 이겨내려는 노력, 무엇보다 바다를 향하는 온 국민의 관심과 애정이 함께 어우러질 때 바다는 그 큰 품을 기꺼이 내어줄 것이다. 우리 국민의 염원인 해양강국의 미래도 활짝 열리게 된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선물을 하나 받았다. “걱정일랑 이 인형들에게 맡겨”라는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건넨 작은 상자에는 과테말라 전통인형인 걱정인형 6개가 들어 있었다. 아이가 걱정이나 공포로 잠들지 못할 때 부모가 인형을 선물했는데 이것을 베개 밑에 두고 자면 걱정거리를 인형이 가져간다고 믿었다고 한다.
오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해양산업 종사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 국민에게 해양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올해 우리 공단에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새롭게 출범하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이 해양안전의 든든한 파수꾼이 되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책임을 절감한다. 국민이 안심하고 바다를 즐길 수 있기를, 그래서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의 큰 행보를 하는 데 든든한 ‘걱정인형’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오늘도 우리는 현장으로 나간다. 바다로!
이연승 선박안전기술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