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셀 코리아’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외국인 투자자가 올해 최장 기간인 7거래일 연속으로 ‘팔자’에 나선 데다 환율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자 본격적 ‘코리아 엑소더스’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투자자금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역(逆) 머니무브’ 현상을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여기에다 원화 약세, 국내 경기 부진 등 한국만의 악재가 가세하면서 외국인자금 이탈을 부채질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당분간 주가지수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데드 캣 바운스’(죽은 고양이의 반등·Dead cat bounce)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제기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이 지난 9일부터 7거래일 연속 1조6985억원을 순매도했다고 19일 밝혔다. 올해 들어 가장 긴 순매도 행진이다. 외국인은 지난 1월(4조500억원 순매수)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꾸준히 국내 주식을 담아 왔다. 하지만 이달 들어 정반대 움직임을 보인다. 외국인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코스피지수도 지난달 말(2203.59)보다 147.79포인트 급락한 2055.80까지 주저앉았다.
외국인의 변심에는 주식에서 채권으로,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글로벌 투자자금이 옮겨가는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9일부터 일주일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주식형 펀드에서 186억 달러나 빠져나갔다.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도 같은 기간 62억 달러의 자금이 떠나면서 유출 규모가 전주 대비 43억 달러나 늘었다. 반면 채권 투자자금은 확대됐다. 지난 9일부터 일주일간 선진국 채권형 펀드에는 51억 달러가 신규로 들어왔다. 19주 연속 유입 흐름이다. 이와 달리 신흥국 채권형 펀드에서는 18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강영숙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글로벌 펀드 자금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신흥국은 주식과 채권 모두 자금 이탈 현상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신흥국에 대한 투자심리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 17일 위안화 가치가 폭락하며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은 6.9위안까지 올랐다. 중국 당국의 ‘심리적 저지선’(7위안)에 근접한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발표한 투자 노트에서 “미·중 무역관계와 글로벌 경기 방향이 명확해질 때까지 신흥시장 통화·채권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축소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여기에 원·달러 환율 급등(원화 가치 급락)이 더해지면서 자금 이탈 속도가 더 빨라졌다. 중국 위안화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원화 가치는 연일 추락 중이다. 지난 17일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195.7원으로 1200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기본적 원인은 국내 경제 여건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취약한 펀더멘털(기초체력)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반도체산업의 부진과 수출 감소 여파로 올해 1분기 코스피 상장사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대비 38.75%나 감소했다.
원화 가치 급락으로 달러 환산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저점 아래로 내려앉았다. 환 손실을 우려한 매도 흐름이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연초에 유입됐던 외국인 자금들도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며 “코스피지수 상승과는 별개로 원화 가치의 강세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당장 이달 말로 예정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 편입비중 조정이 한국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MSCI가 신흥국지수에서 중국 A주 편입 비율을 높이면 한국의 비중은 줄어든다. MSCI 비중 축소에 따라 글로벌 자금은 한국 증시에서 추가로 이탈할 확률이 커진다.
‘설상가상’인 국내 증시 상황을 고려할 때 약세장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급락한 만큼 주가지수가 소폭 상승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하락장에서 잠깐 반등하는 ‘데드 캣 바운스’에 그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한국은 1분기에 ‘역성장’이라는 쇼크를 기록하는 등 경제 기초체력의 불안감이 여전한 상황”이라며 “(코스피지수의 반등이 나타나도) 추세 반전이나 기술적 반등보다는 데드 캣 바운드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희망적 전망도 있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의 매도 규모에 비해 장중 주가 흐름은 견조하다. 지난해 10월 같은 급락세가 나타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임주언 양민철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