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스캔들에 무너진 오스트리아 연정… “조기 총선”

입력 2019-05-19 19:42 수정 2019-05-19 22:47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국민당 당수(왼쪽)와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극우 자유당당수가 지난 2017년 12월 16일(현지시간) 빈 호프부르크 궁에서 연정합의를 발표한 이후 알렉산더 반 데어 벨렌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AP뉴시스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FPO)을 이끄는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가 부총리직에서 사퇴했다. 자신의 부패 혐의가 담긴 동영상이 언론을 통해 폭로된 지 하루 만이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즉각 FPO와의 연정을 파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는 18일(현지시간) 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영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여성에게) 환심을 사려는 10대 소년처럼 행동했다”면서도 “이번 일은 나를 겨냥한 정치적 암살이다. 아무런 불법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를 궁지로 몬 영상은 독일 매체 슈피겔과 쥐트도이체자이퉁을 통해 17일 공개됐다. 2년 전 스페인 이비자섬에서 촬영된 이 영상에는 그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조카라고 밝힌 여성과 대화하는 장면이 담겼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는 샴페인이 놓인 테이블 앞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며 정치인 자질을 의심케 하는 발언을 남발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최대 언론 크로넨을 인수해 언론을 장악하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 언론인들을 성매매 종사자에 비유했다. 러시아 여성이 크로넨 인수를 돕고 선거자금을 기부한다면 “공공계약을 몰아줘 큰 이윤을 보장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쿠르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영상이 공개된 후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다. 이제 연정은 충분하다”며 연정 파기를 선언했다. 그는 또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조속히 총선을 실시할 수 있도록 일정을 정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쿠르츠 총리와 집권 국민당은 최근 극단적 발언을 쏟아냈던 FPO와 연정을 유지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온 것으로 보인다. 슈트라헤 전 부총리는 지난 2일 “인구 대체(population replacement)는 오스트리아에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인구 대체는 무슬림 이주자들이 유럽에서 백인과 기독교인을 대체하고 있다고 믿는 극우 음모론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지난달에는 히틀러의 생가가 있는 도시 브라우나우의 FPO 소속 부시장이 이민자를 쥐로 묘사한 시를 써서 논란이 됐다. FPO는 1950년대 나치 부역자들이 중심이 돼 만들었다. 오랫동안 비주류였지만 2017년 극우정당 최초로 내각에 참여하는 데 성공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