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오는 23~26일 5년 만에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통합과 분열의 갈림길에 섰다. 선거에서 반(反)난민·반EU를 내건 극우세력의 전례 없는 약진이 예상되면서 유럽 통합을 선도해온 중도파들은 힘을 잃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간 지켜온 통합과 관용의 가치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유럽 내 정당과 정치인들은 EU를 두고 찬반으로 나뉘어 선거 전 막판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8일(현지시간) 크로아티아 방문 중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의 부패 의혹에 대해 “포퓰리스트들이 부패 척결, 소수자 보호 등 유럽의 핵심 가치를 파괴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럽의 가치를 경멸하는 포퓰리스트들의 움직임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며 “우리는 기본적인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고 정치가 부패로 얼룩지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유럽의회 선거에 앞서 유권자들에게 대놓고 지지를 촉구한 것은 처음이다. 독일은 유럽의회에서 9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 11개국의 극우 정당 지도자들은 같은 날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광장에서 공동 선거 유세를 펼치며 세를 과시했다. 유세를 이끈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우리는 극단주의자나 인종주의자, 파시스트가 아니다”며 “극단주의자는 20여년 동안 유럽을 가난과 위험에 빠뜨린 주류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난민을 겨냥해 “수년간 유럽을 불법 점거했던 자들을 몰아낼 수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거 유세에는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 독일 포퓰리즘 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의 외르크 모이텐 공동대표도 참석했다.
23일부터 나흘간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에선 EU 28개국 유권자 4억2700만명이 의원 751명을 뽑는다. 선거 결과에 따라 EU 행정부 수장인 EU 집행위원장도 정해진다. 현재로선 유럽의회 내 최대 정파 국민당그룹(EPP)의 대표 만프레드 베버 의원이 집행위원장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선거는 개별 국가 단위로 진행되며, 의석수는 각국 인구 수에 비례해 배정된다.
이번 선거는 2015년 유럽 난민 위기,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처음으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난민 문제는 201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유럽 각국에서 정치지형을 뒤흔들며 그 위력을 증명해왔다. 이탈리아와 헝가리에서는 이미 극우 정부가 집권해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펴고 있고, 스웨덴 핀란드 스페인 총선에서도 극우 정당들이 급부상했다. 2015년 파리 총격 사건 이후 일상화된 테러는 유럽 내 반난민 정서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선거 결과는 5년간 변화된 유럽 국민들의 민심을 한눈에 보여줄 것으로 관측된다.
극우 정당들의 약진은 일찌감치 감지되고 있다. 극우 성향인 영국 브렉시트당은 지난 16일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 조사 결과 유럽의회 내 정당지지율 35%를 얻으며 1위에 올랐다. RN도 유럽의회에서 프랑스에 배당된 의석 중 가장 많은 자리를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RN은 2014년 선거 때도 득표율 26%를 얻으며 프랑스의 의석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한 바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