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최대 참극 ‘맹산 학살’… ‘제암리 희생자’의 배에 가까운 53명 몰살

입력 2019-05-20 21:25
평안남도 맹산 학살 사건이 발생한 뒤 평남 도장관이 조선총독부에 보고한 문서. “3월 10일 오후 2시 다수의 폭민이 습격해 충돌한 결과 헌병 전사 1명, 폭민 사상자 51명을 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제암리 학살 사건은 3·1운동의 대표적 참극으로 꼽힌다. 1919년 4월 15일 만세운동이 일어난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 일본 군경이 들이닥쳐 양민들을 교회에 가둬놓고 집중 사격을 퍼부어 29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보다 앞선 3월 10일 평안남도 맹산군에서는 더 많은 양민이 희생됐다. 일본 군경은 만세시위를 벌이던 주민 100여명을 헌병분견소(파출소)에 몰아넣고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한일관계사료집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53명이 몰살됐다.

제암리교회 학살 희생자 수의 배에 가까운 수치로, 3·1운동사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맹산 학살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제100주년 3·1절 기념식 경축사에서 언급하며 주목받았다.

문 대통령은 “최대 참극은 평안남도 맹산에서 벌어졌습니다. 체포·구금된 교사의 석방을 요구하러 간 주민들을 일제는 헌병분견소 안에서 학살했습니다”라고 잊혀진 참극을 알렸다.

사건 규모나 의미를 고려하면 현지 조사와 추모가 필요하지만 3·1운동에 대한 북한 정권의 인식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항일운동사 전반을 김일성 주석 일가의 지배체제와 연관지어 평가하기 때문에 김일성 일가와의 연관성이 떨어지는 3·1운동을 깊이 연구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20일 “북한이 김일성 중심의 항일 무장투쟁 역사를 정권 정당성의 근거로 삼기 때문에 민중이 중심이었던 3·1운동이 부각되는 것을 꺼린다”며 “남북 양측이 역사에서 더 중시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맹산 학살은 일제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므로 장소를 제대로 보존하고 희생자들을 기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제암리 학살 유적은 국가지정문화재가 됐고 기념관도 세워 추모하고 있다. 맹산 학살 유적도 제암리 사례와 같이 북측 3·1운동의 성지로 보존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성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