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숨을 돌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틈바구니에서 고전하는 한국에 ‘미국의 수입차 관세 부과 연기’라는 단비가 내렸다. 단순하게 180일이라는 시간만 벌어들인 게 아니다. 산업계에선 사실상 ‘관세 면제국’에 근접했다고 판단한다.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긍정적으로 언급해서다.
다만 정부는 여전히 신중하다. 아직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보고, 오는 11월 발표 때까지 모든 경로로 미국을 설득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현지시간) 포고문을 발표하고 수입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 결정을 6개월 연기하기로 했다. 연기 대상을 ‘유럽연합(EU)과 일본, 그 외 다른 나라’로 명시했다. 산업계에선 양자 무역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EU와 일본만 직접 명시한 점에 주목한다. 한국을 포함한 나머지 국가는 예외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포고문에서 한·미 FTA 재협상을 긍정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점도 힘을 싣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포고문에서 “재협상이 이뤄진 한·미 협정, 최근에 서명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도 고려했다. 이들 협정이 시행되면 국가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수입차 관세 부과 근거로 삼고 있다. 이 조항은 ‘수입에 따른 통상안보 위협’이 요건이다. 포고문 내용이 한국의 관세 면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샴페인 터뜨리기’를 경계한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이번 포고문의 특징은 결정을 유예했다는 내용만 있을 뿐 어떤 국가에 관세 부과를 면제할지 명확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라며 “한국과의 FTA 재협상을 언급한 대목은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신중론을 펼치는 것은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및 부품에 관세를 부과했을 때 발생하는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미국에 수출한 완성차는 81만1124대에 이른다. 한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33.1%나 차지하는 수치다. 자동차 부품 수출도 미국 의존도가 높다. 현재 0%인 관세가 25%로 오르게 되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일 오전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