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선고자에게 희망고문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하는 것 아닌가요?” 최근 췌장암 환자들 사이에서 서울아산병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향한 원망이 커지고 있다. 사망선고를 받은 이들에게 생명줄이라고 믿을만한 약과 치료방법이 있고, 실제 3개월이라던 삶을 3년 이상 이어오는 이들이 등장했지만, 정부의 의약품 임상 및 허가정책과 의사의 개인주의적 사고에 희망을 잃고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엄 모(55)씨는 3개월 전 연세의료원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췌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주변으로의 전이가 진행됐고, 앞으로는 위가 뒤로는 대동맥과 대정맥이 지나는 췌장(이자)의 해부학적 위치로 인해 수술과 같은 외과적 시술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며 방사선 치료를 권했지만, 면역체계 파괴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것 보다는 하루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며 거부했다.
현재 엄 씨는 병원에서 통증제어 등을 위해 지어준 약과 항암버섯 등 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각종 민간요법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희망도 꺾였다. 3개월여간 생을 정리하는 와중에 들려온 서울아산병원의 췌장암 광역학치료 임상시험결과에 작게나마 희망이 생겼지만, 연구자임상이 종료된 후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곧 체념했다는 것. 그는 “눈앞에 치료방법이 있는데 손 쓸 도리가 없다.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엄 씨의 기대가 헛된 기대는 아니었다. 아산병원 박도현 교수가 췌장암환자 2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자임상에 직접 참여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임상시험결과는 획기적이었다. 2007년 대한내과학회지에 실린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통상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췌장암 말기(4기) 환자의 여명은 중간값으로 5.5개월이다.
반면 2018년 UEG(United European Gastroenterology) 발표자료에 올랐던 연구자임상 결과는 304일로 약 10개월에 이르렀다.
실제 아산병원 연구자임상 참여자 29명의 임상시험 결과에서도 9명의 췌장암환자가 2015년 12월을 시작으로 2세대 광과민제 ‘포토론’을 이용한 내시경 방식의 광역학치료(PDT)를 2번 이상 받았고, 유의미한 효과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췌장암환자의 상세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체중변화가 이들 9명 중 3명을 제외하고 5kg 미만이었고, 체중이 증가하는 이들도 있어 PDT가 췌장암 치료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더구나 이들 임상시험 참여자들의 경우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등 기존 치료에 반응이 없어 사실상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환자였음에도 일부가 2018년 1월 임상 종료 후 추가시술을 받지 못하고도 완치판정을 받고 지금까지 생존해있다. 이와 관련 임상시험에 관여했던 관계자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추적관찰을 하는 환자도 있다. 임상시험만이라도 다시 시작된다면 췌장암 환자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약도, 치료법도, 의사도 있지만, 정부의 무관심과 원칙주의, 의사의 이기심에 환자들은 생명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