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최대 12만명의 미군 병력을 중동에 파견하는 내용의 대(對)이란 군사계획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미국의 대규모 군사 파견 구상까지 나오면서 이라크 전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지난 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고위급 안보회의에서 이란이 미군을 공격하거나 핵무기 개발을 재개할 경우 중동 지역에 12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구상을 보고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 보도했다.
병력 12만명은 2003년 이라크 침공에 동원된 미군 병력과 비슷한 규모다. 이런 대규모 병력 언급에 일부 참석자들은 놀랐다고 한다.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2011년 미군의 이라크 철수 이후 중동에 대한 군사력을 축소해 왔던 미국의 대외 정책은 180도 뒤집히게 된다. 섀너핸 대행은 병력 배치를 완료하는 데 수주에서 수개월까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고 NYT는 전했다.
이 계획이 보고된 안보회의에는 섀너핸 대행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대이란 군사계획은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되는 볼턴 보좌관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볼턴 보좌관은 최근 미국이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 등을 중동 쪽으로 이동시킨 것에 대해 “오해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히며 강경한 입장을 피력해 왔다.
미국은 지중해에 있던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B-52 전략폭격기, 패트리엇 미사일 등을 속속 중동에 배치 중이다. NYT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했다가 묵살된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행정부에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병 규모 등 세부사항에 대해 알고 있는지, 실제로 그렇게 많은 미군을 중동에 다시 보내게 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의 회담 직전 이란과 전쟁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며 “만약 이란이 대항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날 중동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유조선 사보타주(의도적 파괴행위)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미 정부 관리는 지난 12일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영해 인근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2척을 포함한 선박 4척이 공격당한 사건을 초기 평가한 결과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단체가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사우디 유조선 외에 노르웨이 국적 선박 1척과 UAE 선박 1척도 피습됐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긴장은 연일 고조되고 있다.
이란은 지난 8일 금융 거래 및 석유 수출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제재가 60일 안에 풀리지 않으면 핵무기 개발을 재개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비(非)석유 수출품 중 가장 비중이 큰 철광석 강철 구리 알루미늄 등 광물 수출을 봉쇄하며 맞불을 놨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