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여론에 민감하다. 표심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판가름나는 여의도 정치판에서 여론은 곧 생명줄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듯 여론에 역행하는 정당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코끼리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보다 낮다. 정당들은 수시로 자체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해 민심을 살핀다.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생존전략이다.
정치는 생물이라 여론 또한 변화무쌍하다. 일순간 올랐다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게 지지도다. 요즘은 주간 단위로 대통령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는 물론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한 정기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돼 민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렇듯 여론의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이를 조작하려는 시도들도 적지 않다. 드루킹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지난주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졌다. KBS MBC SBS 지상파 3사와 YTN도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KBS는 한국리서치, MBC는 코리아리서치, SBS는 칸타코리아, YTN은 리얼미터와 각각 여론조사를 했다. 조사항목은 대동소이했고, 국정운영 평가 등 대부분 항목에서 결과도 비슷하게 나왔다. 그러나 유독 정당 지지도만은 지상파 3사와 YTN 간 괴리가 컸다.
YTN 의뢰로 리얼미터(기간 5월 7~10일·조사 대상 2020명)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 38.7%, 자유한국당 34.3%, 바른미래당 4.9%, 민주평화당 2.2%, 정의당 7.1%로 집계됐다. 표본오차가 95% 신뢰수준에 ±2.2% 포인트이니 최대 오차범위를 적용하면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율이 같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KBS·한국리서치(기간 5월 7~8일·조사 대상 1000명) 조사에선 민주당 34.7%, 한국당 21.7%, 바른미래당 5.1%, 민주평화당 1.8%, 정의당 9.3%로 민주당이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나 한국당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MBC·코리아리서치(기간 5월 5~6일·조사 대상 1006명) 조사 역시 민주당 36.9%, 한국당 24.7%, 바른미래당 5.6%, 민주평화당 1.1%, 정의당 12.6%로 큰 차이가 없다. SBS·칸타코리아(기간 5월 7~8일·조사 대상 1007명) 조사의 경우 민주당 32.2%, 한국당 16.8%, 바른미래당 4.3%, 민주평화당 0.8%, 정의당 6.8%로 민주당이 한국당을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앞섰다(지상파 3사 모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 포인트).
헷갈린다. 민주, 한국 두 당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내에 들어왔다는 건지, 아니면 더블스코어라는 건지, 도대체 어느 게 제대로 된 민심의 척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처럼 지상파 3사와 YTN의 현저히 다른 결과는 조사 방식 차이에 기인한다.
YTN·리얼미터는 유선 ARS 20%, 무선 ARS 70%, 무선전화면접 10% 방식으로 조사했다. 이에 비해 KBS·한국리서치는 유선전화면접 19.7%·무선전화면접 80.3%, MBC·코리아리서치는 유선전화면접 19.0%·무선전화면접 81.0%, SBS·칸타코리아는 유선전화면접 19.2%·무선전화면접 80.8% 방식을 사용했다. ‘ARS와 전화면접 가운데 어느 게 정확한가’ 하는 문제는 여론조사업계의 해묵은 논쟁이다.
정치·사회 무관심층은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높다. 잘못된 여론조사는 이 같은 밴드왜건 효과를 증폭시켜 민심의 왜곡을 부른다. 여론조사 업체가 난립하면서 독이 되는 여론조사가 적잖다. ‘같은 항목 다른 결과’는 여론조사를 맹신해선 안 된다는 경고다.
이흥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