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전쟁, 기나긴 수렁에 빠지다

입력 2019-05-14 04:00

세계 최강대국 지위를 놓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600억 달러어치 미국산 제품에 대해 6월 1일부터 25%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경제 패권을 놓고 싸우는 무역전쟁은 이미 한쪽이 백기를 들어야 끝날 정도록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미·중 무역합의의 법제화와 문서화를 요구하며 관세폭탄을 투척했으나 중국은 이를 ‘주권 침해’나 ‘항복문서’라고 반발하며 결사항전 태세다. 무역전쟁이 앞으로 수십년간 이어질 미·중 패권전쟁의 서막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협상 결렬이 서로 상대방 책임이라고 비난하며 기약없는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재정부는 13일 공고를 통해 다음 달 1일부터 600억 달러 상당의 미국 상품 총 5140개에 대한 추가관세 비율을 현 5~10%에서 5~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2000억 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10%에서 25% 인상하자 맞대응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중국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관세 인상에 유감을 표명하며, 이에 대해 필요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비난수위도 높였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3일 ‘어떤 도전도 중국의 전진을 막을 수 없다’는 제목의 평론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는 출구가 없다”며 “중국은 중대 원칙 문제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웨이젠궈 전 상무부 부부장은 “중국이 보복 조치를 해야 미국이 이성을 되찾고 잘못된 생각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글로벌타임스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트위터를 통해 재차 중국에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중국은 오래도록 미국을 이용해 왔다. 중국이 보복하려고 해봐야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미국과) 거래하지 않으면 중국이 심하게 다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지식재산권 보호와 외국 기업들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국유기업 보조금 폐지 등을 법제화해 중국의 구조적 변화를 담보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 기회에 중국의 기세를 꺾어놔야 패권전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반면 중국은 국영기업 보조금 폐지 요구 등은 중국의 개발 방식 포기를 강요하는 항복문서이자 주권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과거 서양과 일본에 겪은 굴욕을 연상시키는 내정간섭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내에선 신중국 건국 70주년인 올해 미국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는 데 부담을 느끼며 강경파인 ‘잉파이(鷹派)’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외쳐온 시 주석이 리더십 위기를 피하기 위해선 대미 강경론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큰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이 깊어지자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는 신흥 패권국이 부상하면 기존 패권국이 두려움을 느끼고 견제하다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년간의 미·중 무역전쟁이 향후 수십년간 지속될지도 모를 경제전쟁 초기의 소규모 전투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스탠퍼드대의 데이비드 램프턴은 “중국과의 고통스러운 교섭이 수십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