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금 동시다발적 외교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와는 안보 문제로 충돌하고 있고, 중국과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낮춰 불렀던 이른바 ‘불량국가’들로부터 동시다발적인 반격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 미 언론에서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해외의 복잡한 문제에 미국 개입을 축소하는 ‘신고립주의’를 주창했으나 오히려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중국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트럼프 행정부가 위기를 자초한 원인으로 ‘모 아니면 도(go big or go home)’ 접근 방식과 ‘최대 압박’ 전략, 미국 일방주의를 꼽았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인 ‘모 아니면 도’ 접근법이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중국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최대 압박’ 정책으로 이어졌다고 WP는 지적했다. 외교정책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뒤로 밀렸다는 것이다.
미국이 현재 직면한 위기는 다른 근본적인 문제를 노출시키고 있다.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등에 신경을 쓰면서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가장 핵심 목표인 러시아와 중국 대응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맹국을 배려하지 않는 트럼프식 일방주의도 미국이 홀로 위기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과 동맹 관계를 끊었으며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는 때때로 한국과 충돌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그나마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해선 동맹국들과 상대적으로 협조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WP는 “최대 압박 전략이 가끔 중대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재선 캠페인에 활용하려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대 압박 전략은 오판의 위험이 있다. 국무부 유럽담당 차관보를 지낸 제임스 도빈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벼랑끝 전술’ 성향이 그의 허세와 결합할 경우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국가에 대한 군사 옵션을 행동으로 옮길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다만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의 해외 주둔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고, 초강경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해온 것을 감안하면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내다봤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모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는 지적에 반박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문제에서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그들이 나에게 전화하는 것을 보고 싶다”면서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트럼프 행정부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힘겹게 조성된 북·미 대화 모드가 위기를 맞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을 시도하는 친미 세력의 군사 봉기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군사행동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병원선을 베네수엘라 인근 해역에 배치했다. 미국 내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의 군사 봉기가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 마두로 정권을 쫓아낼 것으로 잘못 판단하는 등 반마두로 세력을 과대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는 것은 이란 문제다. 2015년 이란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도출했으나 지난해 미국이 이를 파기하고 대이란 경제제재를 복원했다. 이달 초 원유 금수조치까지 전면 시행하자 이란은 제재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핵개발을 재개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린 상태다. 위기가 고조되자 미국은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B-52 폭격기를 중동에 급파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