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비정규직 김모(당시 19세)씨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 3주기(5월 28일)를 앞두고 스크린도어 정비사들이 파업에 나섰다. 코레일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진행하면서 PSD(승강장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했던 기존 용역 직원들을 내보내는 절차를 밟고 있어서다. 김씨 사망 사고 이후 공론화됐던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오히려 비정규직에게 칼날이 돼 돌아온 것으로, 명분만 내세운 ‘탁상행정’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13일 민주여성노조 철도PSD지부에 따르면 코레일에서 PSD 업무를 하는 용역 직원 199명은 다음 달로 코레일과 계약이 만료된다. 코레일이 고용 승계를 거부한 직원 가운데 100여명은 이날 오전 9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측은 시민 안전을 우려해 파업을 7~10일 동안만 한다는 계획이다.
다음 달 계약이 만료되는 199명은 코레일이 2017년 7월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신규 역사 증가에 따른 인력 충당 명목으로 뽑은 직원들이다. 코레일은 가이드라인 이전 계약했던 PSD 인력 91명은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199명은 전환하지 않고 대신 올해 신입사원 173명을 채용해 그 자리를 대신하기로 했다.
코레일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따른 조치라고 해명했다. ‘가이드라인 발표 시점 기준 현 근로자의 전환을 원칙으로 한다’는 조항에 근거했다는 것이다. 코레일 측은 “가이드라인 이후 입사한 용역 직원들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다”며 “유지·보수의 업무 공백을 막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 인원에 대한 기간제 고용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론 용역 계약을 6월 말까지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용역 직원 199명이 해고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코레일의 PSD 업무는 위험의 외주화의 대표적 사례다. 노조는 “스크린도어 유지·보수는 규정된 매뉴얼이 없고 프로그램에 따라 고장 원인 해결책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의 빠른 판단이 중요하다”며 “신입사원을 현장에 투입하면 안전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도 정규직 전환을 ‘가이드라인 발표 시점 기준 현 근로자 전환을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한 가이드라인이 ‘사각지대’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이드라인의 애매모호한 부분이 기존 인력의 정규직화를 축소 해석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안전 관련 업무에서는 가이드라인을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황선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는 “위험의 외주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 가이드라인도 ‘생명안전업무’에 관해서는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이는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시점에 관계없이 적용되는 기준이기 때문에 이번 사태는 절차상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후에도 생명 안전과 직결된 업무에서 비정규직을 신규로 채용했다는 것 자체도 문제로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연구소 교수는 “정부 가이드라인 때문에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을 나눈다면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보장한다는 원래 취지와 달라지고 오히려 고용을 위협하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정책의 근본적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