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이은 무력 시위에도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 압박 기조를 재확인했다. 미국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 역시 미 정부의 이런 대북 원칙론에 맞서 저강도 도발을 이어가며 장기전을 감내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경제·외교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에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미 국무부는 12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전날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우리의 대북 외교는 두 번 다시 북한의 핵 파일을 열어볼 필요가 없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과거 북한과 했던 합의들은 더 많은 북핵과 미국의 외교적 실패를 낳았을 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북핵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지 않게끔 최종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얘기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대북 압박 공조가 비핵화를 견인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이를 납득시키는 데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지난 9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신뢰 위반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톤을 누그러뜨렸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협상 판이 깨지지 않도록 상황 관리에 나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대화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압박에 떠밀려 협상 원칙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비핵화 협상 시한을 연말로 못박은 북한 입장에선 시간이 많지 않다. 북한은 미국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저강도 도발을 계속하며 긴장 수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북핵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이란 핵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미·중 무역 갈등은 계속 증폭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대화 여건을 조성하는 차원에서 미국과의 공감대 형성 하에 대북 식량지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은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라고 깎아내렸다.
한 외교 소식통은 13일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국제기구의 대북 식량지원은 계속돼 왔다”며 “북한은 우리 정부의 지원 없이도 국제기구를 통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계산 하에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대남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는 이날 “우리 군대는 정상적 훈련 계획에 따라 우리의 영해 안에서 화력타격훈련을 진행했다”며 “이것을 놓고 남조선 군부는 ‘남북 군사합의에 어긋난다’며 비린 청을 돋우었는데 실로 뻔뻔스러운 넋두리”라고 주장했다. 또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며 “남조선 당국이 미국과 보수세력의 눈치나 보고 있다”고 했다.
권지혜 최승욱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