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장중 1180원대… 원화가치 ‘뚝’

입력 2019-05-13 04:03
사진=신화뉴시스

원화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강한 달러’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비관이 작용한 탓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난항에 빠지면서 무역 의존도나 대중(對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전망도 원화 앞길을 어둡게 한다.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만 놓고 보면 호재다. 한국 수출제품에 가격경쟁력이 덧붙을 수 있다. 다만 품질·업황 등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국내 수출 특성상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환율은 당분간 출렁이다 하반기에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182.90원까지 올랐다. 2017년 1월 17일(달러당 1187.30원) 이후 2년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지난달 중순까지 박스권(1100~1140원)에 머무르던 환율은 같은 달 24일 1150.90원, 다음 날 1160.50원으로 치솟았다. 임혜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12일 “미·중 무역전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올해 2분기 안에 12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환율 급등(원화 가치 급락) 방아쇠는 호주 경제지표의 부진이 당겼다. 원자재 수출국인 호주의 자원을 가장 많이 사들이는 나라가 중국이다. 호주 경기는 중국 경제의 ‘선행지표’로 통한다. 호주의 올해 1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 등이 기대치보다 낮으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중국의 지난 4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는 50.2로 시장 예상치(50.9)를 밑돌았다. 반면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시장 예상치(2.3%)보다 높은 3.2%를 기록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제가 탄탄한 흐름을 유지하는 데 비해 다른 나라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부진한 게 확인되면서 환율이 급등했다”고 분석했다.

원화 가치의 하락세는 두드러진다. 신흥국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한 달여간 달러 대비 원화 가치 하락 폭(-2.9%)은 터키 리라화(-9.0%), 아르헨티나 페소화(-3.7%)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 터키와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정치·경제 불안에 시달리는 국가다. 미국과 충돌하는 중국 위안화 가치는 1.0% 하락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암울한 국내 경기 전망을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3%였다. 중국 수출의존도가 24%에 이르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협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4월 배당금 시즌을 맞아 외국인의 역(逆)송금 증가 등 계절적 요인도 더해졌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협상 추이에 따라 환율이 한동안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반기에 국내 수출 회복세가 본격화되고, 미·중 갈등이 해소된다면 원화 가치가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영화 교보증권 연구원은 “국내외 여건 악화 등이 환율에 이미 반영된 측면이 있는 만큼 환율은 다시 하향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