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후에도 일본 정부는 과거 한일청구권협정을 들어 배상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일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국 정부에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에 근거한 협의를 신청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법부 판결 취지에 따라 법대로 피해자 구제에 나서는 게 원칙이지만 외교 마찰 등 현실적인 부분을 감안한 시스템 등 대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강제징용 원고 측의 소송을 대리한 최봉태 변호사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학술대회 발표문을 통해 “불행 중 다행으로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입장을 바꾸어 협의를 신청했다”며 “기회를 살려 해결의 가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 등은 2017년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인권재단 설립 법률의 처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양국 정부와 기업이 모두 참여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인권재단(특수법인)을 설립해 양국 정부와 기업이 모두 참여한 형태로 구성하고 ‘피해자 신고, 확인, 배상금 지급’ 등을 재판 없이 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법안 내용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술대회 토론문에서 “완고하게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낼 가능성이 없는 ‘일본 정부 및 기업 출연금, 기부금, 기탁금’을 규정하는 것, 일본 정부와 기업이 낸 재원으로 배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법률상 화해가 성립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와 김 교수 등이 발표와 토론을 벌이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학술대회는 13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정구창 단장, 전문가,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재단 김용덕 이사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그동안 유족지원 사업을 하면서 미흡했던 부분과 개선해야 할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