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확보 어려울 땐 고소인 측 증거 자세히 살펴 ‘허점’ 찾아야

입력 2019-05-14 19:29
그림=안세희 화백

안녕하세요? 곽준호 변호사입니다. 일전에 몇 년 전 발생한 일로 성범죄 고소를 당했을 경우 피고소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러한 사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그 성범죄 사건(강간) 1심에서 전부 무죄를 받았습니다. 사건 진행을 하면서 오래전 일이고 사건이 있었던 장소 역시 지방인지라 무죄 증거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예컨대 고소인과 피고소인이 술을 마시고 같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피고소인은 술집에서는 진한 스킨십이 있었고 이후 택시에서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소인은 택시를 타자마자 바로 잠들었다는 상반된 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만약 사건 발생 직후에 바로 고소가 이어졌더라면 술집 종업원을 통해 당시 술자리 분위기도 알아보고, 그 택시 기사님을 수소문해서 블랙박스를 확보하거나 증언을 들어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러한 것들을 전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증거 확보가 어려울 때는 오히려 고소인 측이 낸 증거를 자세히 살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 사건도 성관계 직후 고소인이 피고소인을 상대로 질문하고 그 대답을 녹음한 파일 녹취록이 있었는데, 그 녹음 파일 녹취록이 원래는 검찰 측에서 피고소인에 대한 유죄의 증거로 제출됐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 녹음 파일 녹취록 내용을 보니 너무나도 명백한 유죄의 증거라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그 파일 내용을 한 번 보고 두 번 볼수록 뿌연 안개가 걷히듯 오히려 피고소인이 바로 원하던 그 무죄의 증거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소인 측 증거를 변론에 적극 활용해 결국 전부 무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전 제가 했던 사기 사건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61억원 가량의 의류 대금을 속여서 받았다고 고소인은 주장했고 저희 피고소인 측은 ‘돈을 못 갚은 것은 맞지만 거래상 발생하는 단순 채권·채무 관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사건 자체가 아르헨티나에서 일어났던 것인지라 우리 측에 유리한 증인들을 물리·경제적인 이유로 부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고소인 측은 비행기로 현지 경찰에까지 연락해 10여명을 증인으로 데리고 왔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고소인은 이렇게 많은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면 피고소인이 확실하게 유죄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61억원 가량의 의류 대금을 갚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그 사건에서도 저는 우리 측에게 유리한 증거를 전혀 제출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소인 측의 증인들 한 명 한 명에게 집중적으로 진실에 대해 추궁하기로 했습니다. 고소인 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인들을 잔뜩 불렀지만 저는 오히려 고소인 측에서 정말 거짓말을 했다면 아무리 그들끼리 말을 맞춰도 그 증언들 사이에 모순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습니다. 10여명 증인들의 증언을 하나하나 교차적으로 확인했고, 고소인 측 증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 마침내 전부 무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피고소인 측에게 유리한 증거를 시간·물리·경제적인 이유로 찾을 수 없을 때는 결국 역설적으로 고소인이 제출한 증거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소인이 조금 무리하게 고소하는 경우에는 아마도 고소인 자신도 조급해 굳이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증거까지 만들어서 제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피고소인으로서는 무죄로 가는 한 줄기 동아줄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고소인의 진술만 가지고도 유죄 판결이 나올 수 있는 성범죄 사건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그 동아줄을 잘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피고소인의 노력과 변호사의 능력에 달린 것이지만요. 다음번에는 앞서 말한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발생한 61억원 사기 사건에서 전부 무죄를 받은 케이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곽준호 변호사

<법률사무소 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