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대란 초읽기] 임금감소 문제 터질줄 알면서도… 노·사·정 1년간 ‘폭탄 돌리기’

입력 2019-05-10 04:03

‘전국 버스 파업 사태’는 지난해 버스 업종에도 주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이번 사태의 기저에는 장시간 노동에 기대왔던 버스 운전사들의 기형적 임금구조가 놓여 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치밀한 대책 없이 제도를 강행해 시민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당장 파업을 막기 위한 접점 마련이 필요하다면서도 임금구조 개선, 노선 효율화 등으로 버스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구조 개혁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9일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에 따르면 파업을 결행한 버스 노조는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준공영제는 버스 운영체계의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민간 운수업체의 재정을 지원하는 제도다. 현재 서울 등 일부 지자체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자동차노련 관계자는 “주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버스 기사 임금 감소분을 메꾸고 추가 인력 충원을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선 준공영제 실시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해 7월 “주52시간 노동시간 단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버스 준공영제를 전국에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국토부가 내놓은 ‘버스 공공성 및 안전 강화 대책’에선 준공영제 시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대책을 내놓기 전 기획재정부에 준공영제 전국 확대에 따른 예산을 요청했지만 기재부에서 거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관련법상 버스 업무 자체가 지자체의 고유 사업이기 때문에 지원을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중앙정부 재정 지원의 명분’에 대해서도 부처 및 자문 기구 내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국토부가 만든 전문가 자문기구 ‘버스산업발전협의회’에 참여했던 성낙문 한국교통연구원 본부장은 “발전협의회에서 일부 전문가는 버스가 갖고 있는 ‘공공성’을 강조하며 버스 기사의 임금 감소분을 중앙정부가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기형적인 임금구조 개선 등 버스산업의 체질 개선이 우선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이 같은 입장차를 조율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주52시간 근무제를 확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임금 감소는 근로자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건데 주52시간 근로제 시행 이전에 공론화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며 “대비책을 미리 마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 게임’도 계속되고 있다. 김 장관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요금 인상을 요청했지만 이 지사는 수도권 통합 환승 할인제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경기도만 요금 인상폭이 커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요금 인상, 정부 지원 등으로 파업 사태를 막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강성욱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간 동결된 버스요금을 현실화하는 건 불가피하다”며 “갈등을 조율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정부가 나서서 임금 감소분을 보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해결책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버스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은 준공영제 확대를 주장한다. 조규석 한국운수산업연구원 부소장은 “버스는 차가 없는 서민들이 이용하고, 도로 투자 비용이나 대기오염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공공성 측면이 있다”며 “게다가 주52시간 시행은 중앙정부의 기조이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 측이 요구하는 ‘버스 운전자 임금 감소분 정부 지원’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협의회에 참여했던 또 다른 인사는 “무작정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게 답이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본급이 낮아 장시간 근로를 통해 수당을 챙겨야 하는 기형적인 버스 기사의 임금구조”라며 “이를 혁신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고승영 서울대 교수도 “현재 버스 회사들은 노선 운영권을 사유재산으로 쥐고 있으면서 지자체로부터 재정 지원만 바라는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주체가 돼 노선을 효율화하는 등 버스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버스 업종을 주52시간 근로제의 예외 등으로 해서 융통성을 갖추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안규영 박세원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