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 운동권 맏형과 엘리트 판사 출신의 ‘케미’(사람 사이의 조화·호흡을 뜻하는 신조어)가 국회 정상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최악의 여야 대치 국면에서 협상 파트너로 만나게 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인연에 관심이 쏠린다.
두 원내대표의 9일 첫 회동은 화기애애했다. 푸른색 재킷을 입은 나 원내대표는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 세 분 가운데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분”이라며 “역지사지도 해보고 케미도 맞춰보려고 (민주당 색깔과 비슷한 옷을) 신경 써서 입고 왔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도 “나 원내대표는 굉장히 합리적인 보수의 길을 갈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 기대도 크고 응원도 늘 많이 했다”고 화답했다.
나 원내대표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될 각오가 있다”고 하자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1963년생인 나 원내대표는 이 원내대표보다 딱 한 살 많다. 이 원내대표는 “밥 잘 사주신다고 했는데 밥도 잘 먹고 말씀도 잘 듣겠다”고 호응했다. 10분간 이어진 비공개 상견례에서도 큰 웃음소리가 나왔다.
국회 정상화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나 원내대표가 “이 원내대표 당선을 계기로 국민이 원하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 국민들의 말씀을 잘 듣는다면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면적과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해 국회 정상화 논의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내비쳤다. 이 원내대표는 “이 정국을 풀 수 있는 지혜를 주시면 심사숙고해 (야당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화답했다. 이 원내대표는 상견례 후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공식적인 수준에서 마무리했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곧 만들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2004년 17대 국회에 동시 입성한 ‘동기 국회의원’이지만 정치권 입문 전까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1983년 고려대 국문학과에 입학한 이 원내대표는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87년 6월항쟁에 앞장섰고, 6·29선언 직후에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을 이끌어 초대 의장을 지냈다.
같은 기간 나 원내대표는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9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2000년대 초반까지 판사 생활을 하며 ‘엘리트 법조인’의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둘 사이의 정서적 교감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다만 크고 작은 인연은 있다. 둘은 현재 20대 후반기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같이 활동 중이다. 지난해 개헌 논의 과정에서도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함께 몸담았다. 나 원내대표는 이 원내대표가 대표를 맡고 있는 국회의원 연구단체 ‘한반도경제전략연구회’ 멤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각을 세웠던 이력도 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캠프 상임선거대책본부장이던 이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후보였던 나 원내대표의 ‘1억 피부과 논란’이 일었을 때 비판에 나섰다. 지난 3월 나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발언을 했을 때도 이 원내대표가 “나치보다 더 심하다”고 비난했다. 그는 원내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나 원내대표가 극우 정치를 선동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원내대표가 돼서 한국당의 극우적 경향을 막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재희 김용현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