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값이 이상하다. 현재 돼지고기 값은 오름세다. 이를 두고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목소리가 높다. ASF 때문에 중국에서 돼지 폐사가 급증했고, 이는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 급증을 유발하고 있다는 분석도 따라붙는다. 중국은 전 세계 돼지고기 소비량의 30%를 차지하는 1위 소비국이다. 중국이 ‘돼지고기 블랙홀’로 떠오르면 세계 돼지고기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ASF는 돼지에게서만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치사율이 거의 100%에 이른다. 구제역과 달리 예방 백신이 없어 한번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를 유발한다.
그런데 국내 돼지고기 소매가격을 수입산과 국산으로 분리해 따져보면 180도 다른 흐름이 포착된다. 돼지고기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삼겹살의 경우 수입산 가격은 되레 내려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단, ASF가 중국에 이어 몽골과 동남아시아를 강타하고 있는 건 맞다. 아시아 국가에서 ASF가 발병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8월이다. 처음 중국에서 발생한 뒤에 빠르게 주변국으로 퍼지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아시아지역 ASF 발병국은 중국(133건) 베트남(211건) 몽골(11건) 캄보디아(7건)이다.
하지만 ASF가 아직 한국으로 들어오는 돼지고기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시스템에 따르면 9일 현재 수입산 냉동 삼겹살의 평균 소매가격은 100g당 988원이다. 한 달 전(992원)과 비교하면 4원이 낮아졌다. ASF가 창궐하기 이전인 지난해 5월 9일 평균 소매가격(1063원)과 비교하면 무려 75원이나 떨어졌다. 현재 시점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수입산 돼지고기 값이 ASF 때문에 상승했다고 볼 근거가 없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미국 시카고 선물시장에서 ASF 영향으로 돼지고기 가격이 조금 오른 측면이 있다지만, 아직까지 국내로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사실 국산 돼지고기가 상승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국산 냉장 삼겹살은 9일 100g당 평균 1979원에 거래됐다. 1개월 전만 해도 100g당 1785원이었는데 200원 가까이 뛰었다. 삼겹살뿐만이 아니다. 돼지 목살 소매가격도 100g당 평균 1911원으로 1개월 전(1712원)보다 비싸다. 갈비나 앞다리살은 삼겹살, 목살만큼은 아니지만 이달 들어 상승세다.
상승 원인은 무엇일까. 농식품부는 ‘봄’이라는 계절 요인에 무게를 둔다. 봄철 나들이객이 늘면서 돼지고기 수요가 증가한 게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국산 냉장 돼지고기를 선호하면서 수입산 가격은 떨어지는데 국산 값은 오른다는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기는 했지만 평년 소매가격과 비교하면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봐도 ASF 영향이 아직 미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ASF의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불법 휴대 축산물 반입에 따른 과태료를 강화했다. 현행 10만원인 과태료를 최대 1000만원까지 높인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