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은 단연 흉부외과의사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인 ‘심장’을 담당하며 칼(메스) 끝에서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만 주인공이다. 흉부외과의사의 고뇌와 사명감을 다루는 감동 스토리와 TV 속 화려함이 ‘몰락’을 막아내고 있다는 웃기지만, 슬픈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흉부외과 의사들은 고독과 고난을 십수년째 호소한다. 전문분야를 정해야하는 전공의들의 대표적인 기피과목 중 하나로 과장급 전문의가 막내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그럼에도 흉부외과 의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환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자신들의 존재이유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나마 부흥의 불씨를 살릴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던 ‘국가심장수술센터’는 10여년의 준비와 결의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권에서조차 이루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2009년, 대구 5개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들 14명이 이런 고민 끝에 뭉쳤다. 각 병원별로 흩어진 인력과 장비, 예산을 하나로 모아 ‘통합심장수술센터’를 만들고, 만성적인 인력 및 지원 난을 해소하고 더 좋은 진료환경과 질로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자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2013년 6월 이들의 노력은 가시적 성과도 거뒀다. 사단법인 메디시티대구협의회, 경북대병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대구가톨릭대의료원, 영남대의료원, 대구파티마병원, 대구광역시는 ‘메디시티 심장센터’ 설립추진협약을 맺었다. 이와 함께 총 422억원을 들여 60병상 규모에 수술실과 CT·MRI 등 첨단장비를 갖춘 심장검사실을 완비한 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구상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도 2016년도 예산안에 가칭 ‘대구 국가심장센터’ 설립예산 30억원을 책정했다.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예산편성을 위한 설립타당성조사가 미흡하다며 관련 예산을 삭감하며 발생했다. 예산 삭감 후 진행된 1, 2차 설립 타당성 조사결과도 발목을 잡았다. 조사연구에서 지역별 혹은 권역별 통합심장수술센터를 갖추고 국가심장수술센터에서 환자의 배분부터 의료서비스 및 수술의 질 관리까지 총괄하는 체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원 요구도나 미충족 수요, 경제적 타당성 등의 측면에서 충청권이나 전라권이 보다 적합하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의지를 갖고 적극 나섰던 곳과 필요한 곳이 달랐던 셈이다.
이후 지금까지 국가심장수술센터 설립요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요구하는 목소리도, 반대하는 목소리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6월 전후로 흉부외과의 부활, 국가심장수술센터 요구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전망이다. 최근 복지부는 보건산업진흥원에 맡겨 추진했던 국가심장수술센터 설립방안과 국가심혈관센터 설립타당성에 대한 연구용역의 검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6월 초 결과보고서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2009년 14인 중 1인이자 이번 과제를 수행했던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흉부외과 박남희 교수는 “심장환자가 수도권으로 쏠리고. 지역은 수술건수가 줄어들며 의료 질조차 낮아지고, 병원들은 수익악화를 이유로 지원을 줄이거나 재투자를 꺼리게 됐다. 당연하지만 전공의들의 지원율은 떨어지고, 기존 인력의 업무강도는 높아졌다”며 “이대로는 심장병 환자들의 생명이 점점 더 위협받게 된다. 언제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방안이 국가심장수술센터”라고 강조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