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대폭 인상키로 한 시한이 임박했다. 한국시간 10일 오후 1시(현지시간 10일 0시)까지 미국과 중국 간 무역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무역전쟁은 돌이킬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합의 이행을 담보할 법제화 문제 등을 놓고 미·중 양국의 입장 차가 워낙 커 막판 타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합의를 깼다”고 위협을 계속했고, 중국은 “무역전쟁 준비를 마쳤다”며 강력한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물론 마지막에 극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패너마시티비치에서 열린 유세에서 “우리가 (중국산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를 보고 있나. 그들이 합의를 깨뜨렸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그들(중국 협상팀)이 날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1년에 1000억 달러 이상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쁠 게 없다”며 “중국이 우리의 노동자들을 편취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류허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협상 대표단은 워싱턴에서 미국 측과 협상에 들어갔으며, 진전이 없다면 현지시간 10일 0시1분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 관세가 기존 10%에서 25%로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이 기존 합의 초안을 모두 뒤집었다”고 비난하고, 중국은 “미국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맞서고 있어 극적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지난 3일 밤늦게 무역합의 초안을 대폭 수정한 150쪽 분량의 문건을 미국에 보내왔다”며 “중국 측 수정안은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을 뒤집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지식재산권과 무역기밀 절취, 기술이전 강요, 경쟁정책, 금융서비스 접근권, 환율 조작 등 초안을 구성한 7개 항목에서 미국의 불만 사항들을 해결할 법률 개정 약속을 모두 삭제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미국 측은 실효성 있는 무역 합의가 되려면 중국의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지만 중국 측이 관련 문구를 삭제하자 협상 자체가 의미없다고 보고 판을 깨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한 소식통은 협상 결렬 이유에 대해 “중국이 욕심을 부렸다. 중국은 최소 12개 정도는 뒤집었다. 협상이 너무 형편없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5일까지 기다렸다가 터뜨린 게 진짜 놀랄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은 원칙적으로 합의한 모든 약속을 최종 합의문에 넣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스인훙 인민대 교수는 “미국은 국영기업 보조금 철폐 등 중국이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밝혔다.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국유기업 보조금 폐지 등 미국의 일부 요구는 중국의 발전 모델을 해칠 수 있다”며 “이는 중국의 경제개발 방식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미 무역대표부(USTR)는 관보 사이트에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 중인 10% 관세율을 오는 10일 0시1분부터 25%로 인상하겠다고 공지했다. USTR은 “중국은 이전 협상에서 합의한 구체적인 약속에서 후퇴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 인상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상무부는 곧이어 성명을 내고 관세 인상 시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인상 1분 뒤에 즉각 보복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중국 상무부는 성명에서 “무역 갈등을 격화시키는 것은 양국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중국은 관세 인상 움직임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조성은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