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교육청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학생 찾기에 나섰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에 실종된 유아·학생·청소년 21명이 대상이다.
시교육청은 “초·중·고생으로 당시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계엄군에 의한 희생자는 16개 학교 18명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9일 밝혔다. 하지만 21명의 실종 학생들은 지금까지 시신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 양동초 1학년 이창현(당시 7살·이하 당시 나이)군은 5월 19일 양동시장 인근의 집을 나선 후 소식이 끊겼다. 이군은 또래를 이끄는 동네 골목대장 노릇을 할 정도로 활달한 성격이었다. 광주에서 하숙하던 조선대부속고 1학년 임옥환(17)군은 21일 시민을 향한 계엄군의 집중사격 후 22일 조선대 뒷산에서 고향인 고흥으로 피신하던 중 실종됐다.
문미숙(10)양은 21일 학동 삼거리에서 행방불명됐다. 뇌성마비로 학업을 잇지 못하던 문양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모친은 딸을 찾아 헤매다가 이듬해 숨졌다. 당일 오후 1시 ‘애국가’가 울린 후 전남도청에서는 세 방향으로 도로를 향해 집단 발포가 있었다. 이밖에 23일 화정동 인근 도로에서 계엄군들에게 가족이 붙잡혀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사라진 백모(당시 5살)양을 포함해 5~19세의 유아·청소년 다수가 5·18 직후 실종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여년 만에 가족들과 만난 사례도 있다. 집중발포가 이뤄진 21일 총상으로 숨졌다가 22년 동안 무명열사로 시립공원 묘지 3묘역에 묻혀 있던 ‘실종자’ 송원고 2학년 김기운 학생은 2001년 10월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족과 힘들게 재회했다. 김군은 당시 머리에 총을 맞고 전남도청 인근에서 사망했다.
국립 5·18 민주묘지 4묘역 무명열사 묘지에는 4세 정도의 남아 등 5명이 여전히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묻혀 있다.
시교육청은 당시 학생 희생자들이 다녔던 13개 학교에서 현재 이들을 추모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5·18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전체 숫자는 360여명 정도”라며 “시신이나마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5·18을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들에게 역사적 공감대를 넓히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