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현길] 전임 감독제 흔든 김호철

입력 2019-05-10 04:04

1970, 80년대는 완벽하다, 뛰어나다는 의미로 컴퓨터를 수식어로 붙이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컴퓨터 미인’이라는 말이 있듯 한국 배구에선 ‘컴퓨터 세터’ 계보가 있다. 남자 컴퓨터 세터로 가장 앞자리에 놓일 사람은 이제는 ‘전’ 남자 대표팀 전임 감독이 된 김호철이다. 김 전 감독이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 강만수 한국배구연맹 유소년육성위원장 등과 출전한 7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전 대회 우승팀 폴란드를 비롯해 체코, 루마니아, 미국을 꺾고 사상 첫 4강 진출 위업을 달성했다. 당시 소련, 쿠바에 연달아 패하며 4위에 그쳤지만 세계 배구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김 전 감독이 그 후에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4강 진출의 땅 이탈리아 프로 무대에서 뛸 때도 어김없이 태극 마크를 달았다. 국내에서 대회가 열렸던 86년 서울아시안게임은 물론이고 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대표로 뛰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김 전 감독은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대표팀에 복귀한다. 그의 나이 만 33세였다. 88년 9월 1일자 경향신문은 “불후의 명세터로 몇 번씩이나 태극유니폼을 벗었지만 큰일이 벌어지면 반드시 ‘모시는’ 바람에 서울올림픽에서 다시 그 멋진 토스를 선보이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지도자로 변신한 그를 대표팀에 모시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9년 월드리그대회를 앞두고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17년 4월 세 번째로 대표팀 감독에 올랐고, 이듬해 남자 대표팀 초대 전임 감독에 선임됐다.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김 전 감독은 지난 7일 사표가 수리돼 대표팀 전임 감독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프로배구 OK저축은행 감독으로의 이적 시도가 언론 보도로 알려진 지 한 달 만이다. 2010년 대표팀 감독에서 두 번째로 물러날 때 후배 코치의 선수 폭행으로 사실상 경질 처분을 받은 데 이어 또다시 아쉬운 퇴진이다. 현재로선 배구계 복귀 여부를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배구 경력의 마무리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배구계로서도 씁쓸한 일이다. 2018-2019 시즌을 거치며 프로배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상황이라 더욱 안타깝다.

이번 논란은 한편으론 40년 전 세계 4강에서 한없이 멀어진 현 남자 배구 대표팀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계 4강에 올랐던 영광을 뒤로하고, 노력해도 올림픽 무대를 밟을지 알 수 없는 처지다. 남자 배구가 올림픽 코트에 선 것도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마지막이었다. 내년에도 실패하면 20년 동안 올림픽은 남의 무대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전임 감독이 프로팀 감독 자리를 알아보고, 프로팀은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응했다가 고개를 숙이고, 협회는 막지 못한 것인지 방조한 것인지를 놓고 진실게임을 해야 하는 서글픈 맨얼굴을 드러냈다. 협회 관계자가 일부 보도처럼 이적 움직임을 알고도 오히려 권유한 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를 동호회 수준으로 격하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구는 흔히 ‘세터 놀음’이라고 한다. 상황 변화에 맞게 재빨리 판단해 팀을 지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세터에게 부여되기 때문이다. 김 전 감독은 초대 전임 감독이 해서는 안 될 판단을 했다. 책임의 당사자들이 있지만 그에게 가장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다. 법적으로 이적이 가능했는지, 협회에 먼저 알렸는지 여부에 앞서 초대 전임 감독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표팀 감독의 무게를 생각해 어떤 상황에서도 희생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도에 물러날 수도 있다. 다만 전임 감독제의 필요성을 잘 알고, 공감해온 배구계의 어른이라면 우여곡절 끝에 첫발을 뗀 전임 감독제가 이처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됐다.

김현길 스포츠레저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