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보는 관점, 바울 이전과 이후 어떻게 바뀌었나

입력 2019-05-10 00:06
렘브란트 작 ‘사도 바울’

은혜는 기독교 신학에서 핵심적인 주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은혜는 곧 선물인데,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가리킨다. 신자는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르면서 ‘바울 신학’을 근거리에서 만난다.

그런데 신자가 받는 은혜는 어떤 은혜인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무조건적이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일방적 은혜인가. 아니면 은혜에 대한 답례 의무를 포함하는 고대 시대의 은혜 개념인가. 은혜는 시대와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영국 더럼대 라이트푸트 신약학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저자 존 MG 바클레이는 사도 바울의 은혜(선물)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그는 신약성경의 배경이 된 유대교와 로마사회, 그리고 이후 성경이 해석돼온 역사를 탐구하면서 은혜 개념이 어떻게 이해됐고 또 변화했는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풀어낸다.

1부에서는 선물의 다양한 의미를 찾는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본 선물을 시작으로 그리스·로마 세계의 선물과 상호교환, 은혜의 6가지 의미를 분석한다. 이어 사도 바울의 은혜 개념이 어떻게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 변천됐는지 짚는다. 마르키온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 바르트 불트만 케제만 마르틴 샌더스 새관점학파까지 아우른다.

2부에서는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AD 70년까지를 가리키는 제2성전시대 유대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선물 개념을 설명한다. 솔로몬의 지혜서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쿰란 호다요트, 에스라4서 등의 문서를 살피면서 새관점학파의 선구자, EP 샌더스의 ‘언약적 율법주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3,4부는 이렇게 살핀 선물의 관점에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를 해석한다. 바클레이는 사도바울의 두 서신서를 해석하면서 선물이 은혜의 다양한 개념을 꼭 맞게 설명해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저자는 그리스도라는 선물은 은혜의 비상응성(자격에 상관없이 주어짐)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유대교적 은혜 관념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유대교에서 은혜는 구원을 얻거나 성취하는 수단이 아니라 언약 안에 머무르기 위해 주어진 수단, 곧 율법 준수의 근거가 된다.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는 수혜자의 자격과 상관없이 주어지지만 ‘값싼 은혜’나 ‘용이한 신앙주의(원하는 대로 살도록 허용해주는 죄 용서)’를 옹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신약학계의 논쟁적 주제이기도 한 바울 신학의 지평에도 자신은 속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종교개혁자들까지 가졌던 ‘오래된 관점’이 바울신학과 실천의 핵심이라고 보면서도 은혜는 새관점학파의 주장처럼 유대교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바클레이는 이처럼 양측의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조건이나 가치와 상관없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체제 전복적인 영향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착 상태에 빠진 바울의 은혜 신학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출판사 측은 “바울의 은혜 신학 수용사 부분과 갈라디아서 및 로마서 주석 부분은 설교 준비와 성경연구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목회자들이 틈틈이 참고하면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좋은 선물과 같은 도움을 지속적으로 얻게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