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영적으로 방황하던 길치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

입력 2019-05-13 00:08

어려서부터 나는 길치였다. 친구 집에 놀러갈 때는 친구가 늘 데리러 왔고 5분이면 갈 곳도 한 시간 넘게 헤매기도 했다. 운전도 마찬가지였다. 동서남북 방향감각도 없어 하염없이 같은 곳을 맴도는 일이 참 많았다.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러 인천공항을 가다가 같은 다리를 몇 번씩 왔다갔다 하다가 시간을 놓친 경우도 있었다. 내비게이션 없으면 꼼짝을 못한다.

내가 교회에 처음 간 것은 누나가 있는 미국에 잠시 놀러갔을 때였다. 거기서 천국, 지옥, 죄, 회개 등의 말을 듣고 귀국해 마음먹고 교회에 다녔다. 나를 잘 포장하고 열심히 국내외 단기선교도 다니고 직분도 맡아 믿음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교회 밖에서는 세상을 즐겼다. 그러다 어느 목사님의 “내가 대형 트럭과 충돌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상처 하나 없이 멀쩡히 예배당에 왔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별다른 충격이나 변화 없이 사는 게 가능할까요? 트럭이 큽니까, 하나님이 큽니까?” 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나?’ 하는 본질적인 물음 앞에 섰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을 느낌과 감정, 체험을 통해 얻기 위해 ‘할렐루야, 코카콜라’ 이런 단어들을 반복해서 외치며 방언을 받으려 했고 치유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유명한 성령집회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내가 같이 죽은 것이 깨달아졌다. ‘이제 나는 죽고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위해 살겠습니다.’ 결단을 하고 신앙훈련을 받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정말 열심히 신앙훈련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은혜와 감격, 결단은 다 사라졌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나오는 죄 앞에 속수무책으로 넘어지며 구원의 확신도 흔들렸다. 끝없는 죄와의 싸움을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는지도 암담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과 현재 살고 있는 삶의 간격은 갈수록 커졌다. 내 삶은 눌림 그 자체였다.

이렇게 헤매다가 김성로 목사님의 침례 신문 칼럼을 읽고 집회와 성도들의 간증 영상들을 보고 나서 단숨에 한마음교회로 달려갔다. 처음에 목사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지만 큰 기쁨과 확신 속의 공동체 모습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전도사님과 교제를 했다. 여러 말씀 도중에 하나의 비유를 들어 주셨다. ‘아내가 옆에 있는 데도 자기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 그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무릎이 탁 쳐졌다. ‘이건 정말 느낌과 감정의 문제가 아니구나!’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내게 느껴져야, 내게 뭔가 와 닿기를 기다리며 계속 의심하고 있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집중했다. 예수님 제자들이 순교할 만큼 확고한 믿음은 느낌이나 감정, 체험이나 은사를 경험해서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 이후였다. 부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구약의 약속대로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경대로 부활을 통해 믿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 방법대로 헤맨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였다. 내가 했던 모든 수고는 모두 내 ‘의’였을 뿐이었다. 드디어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마음에 모셨다.

영적·육적인 길치였던 내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업체 직원이 느닷없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믿음은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 같다고 했다. ‘아!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영혼을 주시다니….’ 하며 부활의 복음을 전해 흔들림 없는 믿음의 길로 인도했다.

이제 더 이상 길을 헤매지도, 곁길로 빠지지도 않는다. 부활하셔서 나의 주인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내가 가야할 길을 절대 잃지 않는다.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 영원한 삶의 길을 선명히 보여주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고종호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