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국가책임제로 잇단 강력범죄 예방하자”

입력 2019-05-12 17:30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중증정신질환 관련 사건사고에 국민들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교 옆 정신질환자 수용소 설립을 철회해주세요’라는 청원도 나왔다. 정신의료기관을 ‘정신질환자 수용소’로 표현한 것이 눈길을 끈다. 지난 10일 올라온 해당 청원은 게시된 지 일주일 만에 9000여명이 참여했다. 앞서 지난달 지역기반 정신응급의료 시스템 구축을 요구한 청원보다 서명자 수가 약 4배 많다.

경기도 오산시에 거주한다고 밝힌 청원자는 “학교에서 고작 200m 떨어진 곳에서 폐쇄 정신병동이 설립된다. 조현병 환자, 성범죄자, 관리대상자 등 다른 기관에서 수용 불가한 고위험군 환자들을 수용할 예정”이라며 “맞은 편 아파트에서 쇠창살 등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인데, 주민들의 불안이 너무 크다”고 불안을 호소했다.

故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에 이어 진주 살인·방화사건, 그리고 부산 친누나 살해 사건 등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지역사회도 얼어붙고 있다. 연이은 강력범죄와 이에 대한 국가기관의 부실한 대처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싸늘한 시선과 책임은 고스란히 정신질환자 가족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른바 ‘탈원화 정책’이라 불리는 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됐지만, 병원에서 나온 환자들을 관리할 지역사회 재활 시스템 등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미비하다. 환자들은 병원 대신 ‘집 안’에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조순득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장은 “요즘 같은 때는 연일 심정이 미어진다. 진주사태 이후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악화되는 상황에서 정신질환자 가족들은 숨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정신질환 관련 정책에도 쓴 소리했다. 그는 “탈원화를 시행하면서 강제입원 환자들이 병원 밖을 나왔지만, 정작 지역사회에는 환자들이 갈 곳이 없다. 조기에 치료를 받고 사회에서 재활을 받아 어울려 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방치하고 만성 환자로 만들어 버린 데에는 국가도 책임도 있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실제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높지 않다. 2017년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0.136%이다. 같은 기간에 발생한 전체 인구의 범죄율(3.93%)이 28.9배 높다. 다만, 정신질환 급성기 상태에서 집중치료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타해 위험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급성기 환자에 대한 응급개입체계를 구축하고,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관련 인프라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가동할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현행 전체보건예산의 1.5%인 정신보건예산을 5% 수준으로 확대하는 등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정신질환 사고를 막아야 하는데 현재 법체계와 시스템은 역부족이다”라고 말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