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카드로 단란주점 가고, 황금열쇠 사고… 교비는 ‘눈먼 돈’

입력 2019-05-08 23:12

고려대 교직원들이 법인카드로 유흥비 수백만원을 쓰고, 학생 등록금으로 조성되는 교비로 황금열쇠를 구입해 퇴직자에게 선물하는 등 회계 비리를 저질러오다 교육부 감사에서 덜미를 잡혔다. 교직원들은 개인 신용카드로 수백만원짜리 황금열쇠를 산 뒤 다른 영수증과 섞어 제출해 교비 회계에서 되돌려받는 지능적인 수법도 동원했다. 비리 수법이나 내용이 비리 사립유치원 뺨치는 수준이란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8일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및 고려대 회계부분 감사 결과’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감사는 지난해 6월 27일부터 7월 6일까지 실시됐지만 이의제기와 소명 기간을 거쳐 이날 결과가 공개됐다. 고려대가 회계감사를 받은 건 설립 이후 처음이다.

지적 사항은 모두 22건이었다. 비리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한마디로 교직원 천국이었고, 학생 등록금은 ‘눈먼 돈’이었다. 고려대 산하 3개 부속병원 교직원 13명은 유흥주점 및 단란주점에서 22차례 631만8500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교육부는 이 돈을 전액 부속병원 회계로 환수토록 하고 관련자 13명에 경고 조치했다.

한 교직원은 출퇴근 목적 KTX 이용료 502만5600원을 업무추진비로 집행했다. 학교 측이 증빙자료 없이 시간외근무 보상 명목으로 모두 563건, 5억2538만원을 교직원에게 나눠준 사실도 적발됐다.

학생 등록금이 주된 수입원인 교비로 퇴직 교직원을 위한 ‘파티’를 벌인 점도 드러났다. 비서실장을 지낸 고위 교직원 정년퇴임 때는 543만원짜리 황금열쇠를 선물했는데 지능적인 수법으로 돈을 빼돌렸다. 직원이 개인 신용카드로 세 차례 분할 결제한 뒤 해당 영수증 3개를 다른 카드 영수증에 섞어 제출했다. 이 돈은 교비 회계에서 돌려받았다. 다른 퇴직교원 27명에게 순금 30돈을 선물했는데 이 돈도 교비 회계에서 나왔다. 1억5261만원이 이렇게 부당 지출됐다.

고위 간부 A씨는 해외 출장을 가면서 여비 1172만원을 더 받아 챙겼다. 교수 B씨는 국가 연구과제 6개를 수행하면서 내부 연구원 회의에 외부 기관 직원이 참석한 것으로 회의록을 작성해 회의비를 부당 수령했다. 이렇게 지출된 회의비(식대)는 297건, 3040만원이었다. 교원 15명은 직무 관련된 발명 33건을 산학협력단에 신고하지 않고 개인 명의 특허로 빼돌렸다. 고려대 지원자들에게 걷은 입학전형료 중 1억950만원을 입시 관련 경비로 사용하지 않고 ‘연구수당’ ‘홍보수당’ 명목으로 부당하게 지출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처분은 무겁지 않았다. 중징계 요구 3명, 경징계 요구 11명에 그쳤다. 회수 금액은 3억1845만원, 수사기관 고발은 3건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문재인정부 3년차 목표로 사학개혁을 천명했는데 (고려대처럼) 교비를 흥청망청 써온 학교를 적발하고도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