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8일 전격 사퇴를 결정했다. 선거제·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강행 후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임기 한 달여를 남긴 채 자진 낙마를 택했다. 바른미래당은 김 원내대표 사임을 당 화합과 새 출발의 계기로 삼겠다고 했고, 다른 당과의 합당이나 연대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당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는 불씨는 여전하다. 김 원내대표가 총대를 메고 성사시킨 패스스트랙도 살얼음판 위에 놓이게 됐다.
바른미래당은 오후 2시부터 지도부 재신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열었다. 3시간 동안의 난상토론 끝에 내려진 결론은 김 원내대표의 자진 사퇴와 오는 15일 새 원내대표 선출이었다. 김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의원들에게 드린 상처에 대한 책임을 지고 차기 원내대표 선출 때까지만 임기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문에서 “우리 당 소속 의원 전체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민주평화당과 어떤 형태로든 통합 내지 선거연대를 추진하지 않고 바른미래당의 이름으로 당당히 출마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내홍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되, 내부 자강론에 힘을 실어 당내 갈등을 수습하겠다는 취지다.
바른정당계 좌장인 유승민 의원도 “한국당이든 평화당이든 합당과 연대는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2016년 새누리당을 제 발로 걸어나온 뒤 한국당이 혁신하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합당도 없다는 얘기를 3년간 말했다. 변함없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당과의 연대는 완전히 끝났다. 우리는 이제 제대로 자강하는 바른미래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손학규 대표와 김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 옹호 진영과 유승민·안철수계 연합군의 파워 대결에서 지도부가 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의총에서 손 대표 거취 문제는 깊게 논의되지 않았지만, 김 원내대표의 낙마로 당내 힘의 균형추는 유·안 연합 진영으로 기울게 됐다. 손 대표의 원내 방파제 역할을 하던 김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손 대표의 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무 보이콧을 주도해온 일부 최고위원들 사이에서는 손 대표가 사퇴할 때까지 최고위 불참을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 의원은 “원내 문제는 오늘로 일단락됐다”면서도 “애초 문제의 본질은 4·3 보궐선거 참패와 현 지도부가 차기 총선에 대해 뚜렷한 비전이 없다는 점이었다. 근본적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쪽이 당내 갈등 봉합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면서 당분간 ‘숙려 기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새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다시 파열음이 날 가능성도 있다. 지도부 퇴진을 위해 힘을 모았던 유승민계와 안철수계가 원내대표 후보 선정을 두고 갈등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야 4당 연대로 성사시킨 선거제·공수처 패스트트랙 문제도 변수다. 신임 원내대표가 누구냐에 따라 재협상 주장이 제기될 수 있어서다. 유 의원은 “패스트트랙에 대한 생각은 각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상욱 의원도 “패스트트랙 문제는 새 원내지도부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패스트트랙 반대파가 지도부를 장악하면 당장 김 원내대표가 했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사·보임부터 원위치시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형민 심우삼 김용현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