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치킨게임… 위기의 트럼프 외교, 위기일발 중동정세

입력 2019-05-09 04:02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7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조이 후드 주이라크 미국 대사대리(가운데), 데이비드 새터필드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대행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예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을 전격 취소하고 이라크를 방문했다. AP뉴시스

미국과 이란이 물러서지 않는 ‘강 대 강’ 대결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 핵 합의(JCPOA) 탈퇴 이후 압박 일변도의 대(對)이란 정책을 몰아붙이자 이란도 핵개발 재개까지 언급하며 정면으로 부딪쳤다. 미국과 이란 간 40년 넘는 적대 관계를 해소해줄 것으로 한때 기대됐던 JCPOA는 체결 4년 만에 중대 국면을 맞게 됐다. 지나치게 강경한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란은 트럼프 행정부의 거듭된 제재로 경제 사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자체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JCPOA와 핵개발 재개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온 것이다. 이란 최고국가안보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미국은 일방적이고 불법적인 제재를 거듭해가며 이란에 고통을 주고 국제적 원칙을 훼손했다”며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JCPOA의 다른 당사국들은 미국의 이런 행위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란이 60일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은 JCPOA의 분쟁 해결 규정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나름대로 JCPOA의 틀에서 벗어날 뜻이 없음을 보여준 셈이다. 미국의 일방적 탈퇴에 맞서 자신들에게 절차적 정당성이 있음을 강조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취해온 초강경 이란 정책을 미뤄 이 기간 안에 갈등을 끝낼 실마리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이란이 공언한 대로 60일 이후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경우 사실상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복원하는 셈이 된다. 현재 이란은 경수로에 사용되는 3.67%의 저농축 우라늄만 생산 가능하다. 이란이 2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해 중수로를 가동할 경우 핵무기 재료인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은 이란의 특이동향을 사전에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 베를린을 방문 중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7일 돌연 이라크를 방문해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와 바르함 살리흐 대통령과 회담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라크 방문을 위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및 하이코 마스 외교장관과의 회담을 취소하는 외교적 결례를 감수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기자들에게 이라크 방문 목적이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미 의회전문지 더힐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베네수엘라·중국·이란 문제와 관련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도 미국이 난제들을 홀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꼽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위기는 최근에 집중됐다.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쏜 것은 지난 4일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관세 폭탄을 위협하며 미·중 갈등을 자초한 것은 지난 5일이었다. 실패로 돌아간 베네수엘라 군사 봉기는 지난달 30일 발생했다. 지난 5일엔 이란을 겨냥해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를 중동에 급파했다.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해도 아시아(북한·중국), 중동(이란), 남미(베네수엘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빚어지는 위기 상황을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와 이란 제재에 주력하면서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국가를 겨냥한 군사행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조성은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