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물살 타는 대북 식량 지원… 한·미 워킹그룹서 ‘큰 그림’

입력 2019-05-08 18:47 수정 2019-05-08 23:16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8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정부가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공식화하고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공감대를 표명한 것을 계기로 지원 방식과 규모, 시기 등을 정하는 논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한·미는 10일로 예정된 워킹그룹 회의에서 식량 지원 문제를 포함해 북·미 대화 재개 방안을 다각도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8일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기자들과 만나 “식량 지원을 위해 통일부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하겠다”며 “조만간 구체적 계획이 마련되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취임 후 처음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방문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어떤 품목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지원될지 이제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 단계여서 확정된 것은 없다”며 “직접 지원이냐,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냐의 문제를 포함해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7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정부는 2017년 9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어 국제기구를 통한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지원안을 의결했지만 집행하지는 못했다. 미국이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함에 따라 정부도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지하고 나선 만큼 유니세프나 세계식량계획(WFP)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공여 방식이 다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내보이는 차원에서 직접 식량 지원에 나설 가능성도 일각에서 거론되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국 차원의 지원에 대해선 아직 검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북 식량 지원이 남북, 북·미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겠지만 비핵화 협상을 견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여온 태도를 감안하면 북한이 무력시위 한번 하고 식량 지원 받는 식으로 협상장에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 미국이 새 협상안을 내놓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밝힌 상태다.

대북 식량 지원 시기와 규모 등은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서 큰 윤곽이 잡힐 전망이다. 일본을 거쳐 이날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9일 청와대 인사들을 면담하고 10일 외교부에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 및 워킹그룹 회의를 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기자와의 문답을 통해 최근 북측이 실시한 무기 발사에 대해 “이번 훈련은 그 누구를 겨냥한 것이 아닌 정상적인 군사훈련이며 지역 정세를 격화시킨 것도 없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는 북측도 무기 발사로 인해 북·미 협상 등이 악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권지혜 최승욱 기자. 파주=공동취재단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