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자기인증 적합조사 대상에 현대차의 싼타페, 기아차의 카니발·K3·K7 등 19개 차종을 선정했다. 자기인증 적합조사란 자동차 제조업체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인증한 게 적절했는지 정부가 점검하는 제도다. 자동차를 우선 판매할 수 있게 하되 사후에 안전기준 준수 여부 등을 검증하는 셈이다.
하지만 매년 자기인증 적합조사에서 수천대가 리콜되는 데다 적합조사 이후에도 결함이 발견돼 무더기 리콜되는 사례가 잦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안전에 문제가 있는 자동차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하고 ‘뒷북 조사’로 대응하다보니 자동차 제작사들이 ‘배짱’을 부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과징금도 제작사에 별다른 부담이 안되는 수준이고, 결함이 발견되더라도 자발적 리콜로 넘기면 그만이다. 전문가들은 자기인증 적합조사에서 결함이 발견되면 처벌 수위를 높이는 식으로 헛바퀴 도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8일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 자기인증 적합조사 대상으로 13개 제작사의 19개 차종이 선정됐다. 승용차는 기아차의 K3·K7·카니발, 현대차의 싼타페·아이오닉 일렉트릭, 한국GM의 트랙스1.4·볼트EV, 르노삼성차의 SM5, 토요타의 캠리 하이브리드, 벤츠의 E300, 혼다의 어코드 하이브리드 등 11개 차종이다. 승합차는 현대차 뉴-카운티와 자일대우 레스타, 화물차는 현대차 포터2와 쌍용차 렉스턴스포츠다. 특수차는 만트럭의 TGX가 대상에 포함됐다. 이륜차는 대림오토바이의 CA100, 혼다코리아의 SCR1105WH, 한국모터트레이딩의 CZD300-A다.
현재 자동차 제조사나 수입사는 자동차관리법 30조에 따라 자신들이 만들고 수입한 차가 안전한지, 규정에 맞는지를 스스로 인증한다. 문제가 없으면 별도의 정부 검사 없이 판매할 수 있다. 판매자 자율성을 높여 시장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다. 다만 정부는 자기인증 적합조사로 판매 차량이 실제 안전기준 등을 충족했는지 따져본다. 문제가 있으면 리콜 명령을 내리거나 제작사에 과징금을 부과한다. 일종의 사후 관리 시스템이다.
그러나 자기인증 적합조사가 허울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미 수만대의 차량이 판매된 이후에 조사가 이뤄져 제작사의 ‘배짱 영업’이 가능하다. 올해 자기인증 적합조사 대상인 카니발의 경우 국내에서 8만8443대가 팔렸고, 싼타페는 10만2610대가 판매됐다. K3와 K7도 각각 5만7368대, 3만2166대 판매됐다. 국내 보급대수가 많다보니 결함이 발생하면 소비자 피해도 그만큼 커진다.
부실한 조사도 문제다. 최근 4년간 국토부의 자동차안전기준 자기인증 적합조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승용차 3대 중 1대꼴로 뒤늦게 제작결함이 발견돼 리콜 조치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2014~2017년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실시한 자기인증 적합조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국산·수입산 승용차 50종 가운데 15종은 제작결함으로 시정조치가 이뤄졌다. 자기인증 적합조사 제도가 형식적으로 이뤄진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처벌도 약하다. 때문에 자동차 제작사의 제도 악용을 유도할 수 있다. 정부는 안전기준을 어긴 제작사에 해당 차량 매출액의 1%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 한도는 최대 100억원이다. 제작사가 자발적 리콜을 결정하면 대부분 과징금을 따로 매기지 않는다.
반면 한국처럼 사후 관리 시스템을 운용하는 미국은 허위 인증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수조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자동차가 안전한지 사전에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과징금 한도를 없애 제작사들이 부실 자동차를 만들었다 사후에 적발되면 큰 피해를 입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