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묵은 깊은 맛… 오뚜기카레, ‘국민카레’로 우뚝

입력 2019-05-09 18:51
카레, 케첩, 마요네즈는 오뚜기가 국내에 처음 들여와 한국식으로 정착시킨 글로벌 식품들이다. 사진 속 제품 포장 사진은 각 제품이 처음 출시됐을 당시의 모습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오뚜기 카레(1969년), 오뚜기 3분카레와 3분짜장(1981년), 오뚜기 케 (1971년), 오뚜기 마요네스(1972년). 오뚜기 제공

1969년 5월 5일은 우리나라에서 카레가 처음 시판된 날이다. 카레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40년쯤이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그보다 30년가량 지난 뒤였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점차 사라질 무렵, 색다른 맛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생겨날 즈음 카레가 시중에 등장한 것이다. 그 해 5월 5일 창립한 ㈜오뚜기의 첫 제품 중 하나인 ‘오뚜기카레’가 카레 대중화의 신호탄이 됐다. 카레 시판 2년 뒤인 1971년 국내 시장에 처음 등장한 외국 음식은 케첩이다. 오뚜기가 ‘도마도 케 ’을 내놓으면서다. 이듬해에는 ‘마요네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모두 식품기업 오뚜기가 처음 들여온 제품들이다. 케첩과 마요네즈는 세계적으로 미국산 제품이 점유율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상황인데 국내 기업이 대중화를 선도하면서 한국에선 오뚜기가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오뚜기의 역사는 국내 시판 카레 역사이기도 하고, 국산 케첩과 마요네즈의 기록과도 궤를 같이한다. 오뚜기가 외국 음식을 들여와 국내 기술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내면서 우리식으로 정착시킨 것은 식품업계 안팎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뚜기 관계자는 9일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제공하는 케첩을 보면 오뚜기 제품이 많다”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미국 기반의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기업이 시장을 이끌고 있는 독특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즉석 식품의 시초, 분말카레와 3분카레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지금, HMR 제품의 시초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카레가 등장한다. 고(故) 함태호 명예회장이 오뚜기를 창립하면서 분말 카레를 시장에 내놓은 것은 우리나라 주식인 쌀과 매운맛을 즐기는 한국인의 기호 사이에서 카레라는 접점을 찾아내면서다.

카레는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다양한 음식에 접목시키기 쉽다는 점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제품이다. 분말카레를 넣은 카레 떡볶이, 카레 고로케, 카레 볶음밥, 카레 스파게티 등 카레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이미 존재한다. 지금도 카레를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부터 전문 셰프까지 여러 사람들이 색다른 카레 요리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에 카레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웰빙 식품으로써 카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오뚜기는 강황 등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간 카레의 효능과 효과를 학술적으로 입증하는 ‘카레 및 향신료 국제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사실 가장 간편하게 카레를 먹는 방법이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불필요할 정도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오뚜기 3분카레’다. 끓는 물에 데우거나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간단하게 카레를 먹을 수 있는 이 3분카레는 1981년 처음 출시됐다. 3분카레를 시작으로 ‘3분짜장’ ‘3분햄버그’ ‘3분미트볼’ 등이 나왔다. 캠핑 갈 때 필수품이기도 하고, 엄마가 멀리 여행갈 때 집에 쟁여놓는 제품이기도 하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인도식 커리가 국내 가공식품 시장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 하는 것은 오뚜기 카레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모든 제조라인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위해요소중점관리(HACCP) 설비를 구비해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식품을 생산하고 있는 오뚜기 충북 음성군 대풍공장의 전경. 오뚜기 제공

글로벌 브랜드를 무력화하다

케첩과 마요네즈는 종주국인 미국 기반의 글로벌 브랜드가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뚜기 케 ’과 ‘오뚜기 마요네스’(따옴표 안은 제품명으로 케첩과 마요네즈의 표기법에는 맞지 않는다)의 시장점유율이 80% 이상이다.

글로벌 외식 브랜드인 맥도날드에서 쓰는 케첩도 오뚜기 제품이다. 1980년대 중반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글로벌 브랜드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겉도는 상황으로 귀결됐다. 케첩과 마요네즈만 놓고 봤을 때 세계적으로 국내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보다 앞서는 경우는 우리나라, 인도 등 몇 나라 안 된다.

한국인의 입맛을 길들인 오뚜기의 케첩과 마요네즈도 여러 시행착오 끝에 정착할 수 있었다. 오뚜기 관계자는 “마요네즈는 온도 변화에 민감하고, 수송 과정 중 진동이 심하거나 보관을 잘못하면 쉽게 변질될 수 있어서 출시 초기엔 생산량보다 반품량이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였다”면서도 “하지만 여러 연구 끝에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1등 제품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뚜기 케 ’의 겉모습은 40여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특이한 점이다. 보통 가공식품의 포장이 3~4년을 주기로 바뀌는 데 반해 ‘오뚜기 케 ’은 용기가 유리병에서 튜브 타입으로 바뀌고 깔끔 마개로 쓰임새를 개선한 정도로만 달라졌다.

오뚜기는 외국의 맛을 국내에 들여오기도 했지만 전통 식품을 시중에 내놓은 기업이기도 하다. 1977년 식초, 1983년 참기름, 1986년 옛날당면 등 만들어먹거나 동네 방앗간에서 사먹던 제품들이 오뚜기 상표를 달고 시중에 출시됐다. 오뚜기의 ‘옛날’ 브랜드는 당면에 이어 국수, 미역, 물엿 등 다양한 제품들을 내놓으며 오뚜기의 성장세를 이끌었다. 오뚜기 관계자는 “창업 10년 만에 매출 100억원, 20년 안에 1000억원을 달성했고 지난해는 2조971억원을 기록했다”며 “50년 동안 차근차근 품질과 안전에서 경쟁력을 높여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