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밤 일본 도쿄 뉴오타니호텔. 청융화(程永華·64) 주일 중국대사 송별 행사에는 아베 신조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를 포함한 정재계 인사 1000여명이 총출동했다.
아베 총리는 연단에서 “일·중 관계가 엄혹한 시기에도 유창한 일본어와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양국 관계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며 청 대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8일 “외국 대사 환송 행사에 현직 총리가 참석한 것은 드문 일”이라고 보도했다.
청 대사는 주일대사를 9년이나 지냈다. 최장 기록이다. 1977년부터 4차례 근무해 총 근무기간은 25년에 달한다. 그는 “양국 관계는 가장 힘든 시기를 넘어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왔다”고 화답했다.
일본의 청 대사 예우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일본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일본은 이달 중순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과 일본의 고위급 경제대화에 각료 6명을 보낼 예정이다.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한 아베 정부의 전략이다.
중국도 최근 의식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30일 5·4운동 100주년대회에서 ‘항일(抗日)’을 언급하지 않았다. 시 주석은 지난달 일대일로 정상포럼 기간엔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과 면담했다. 당시 시 주석이 만난 인물 중 국가 정상이 아닌 사람은 니카이 간사장뿐이었다.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중·일 관계는 역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때문이다. 무역전쟁을 치르는 중국은 역내 정치적, 경제적 우호세력이 절실하다. 트럼프로부터 무역협상 압박을 받는 일본 역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
양국의 해빙 분위기는 2017년 9월 주일 중국대사관이 주최한 중국 국경절 및 중·일 수교 45주년 기념식에 아베 총리가 참석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일본 총리의 행사 참석은 15년 만이다. 지난해엔 리커창 총리의 방일, 아베 총리 방중이 이어졌다. 시 주석은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시 주석의 방일은 집권 후 처음이다. 한때 한·일 관계보다 더욱 나빴던 중·일 관계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급속도로 전환된 것이다.
한편 중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고위급 인사들과 만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촉진자 역할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8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중국 측에 북한과 만나면 비핵화를 할 경우 중국과 베트남처럼 얼마든지 체제 보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야기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리 상무위원장과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을 만난 데 이어 왕치산 국가부주석, 왕둥밍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난 뒤 귀국길에 올랐다. 다만 문 의장은 이번 방중에서 시 주석을 만나지 못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문 의장 일행을 홀대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 의장은 그러나 “중국 외교 부분이 완전히 바뀌어 모든 책임이 양제츠 왕치산 리잔수 선에서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 주석을) 못 만났다고 얘기하는 것은 이상하다. 만날 필요성이 점점 없어지는 그런 외교가 된 것”이라며 “미국을 따라가는 대국의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지영 기자,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