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 구상이 공식화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실태 보고서가 명분을 조성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가 결정적인 동력을 제공했다. 북한의 전략유도무기 발사 문제를 논의한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식량지원을 “매우 시의적절하고 긍정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로써 세 가지가 분명해졌다. 미국은 북한의 저강도 도발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 하며, 인도적 지원을 그 당근책으로 선택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불투명해졌던 북핵 외교의 판도는 차츰 정리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제3의 동력을 확보하려던 북한은 의도한 성과를 충분히 얻어내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은 정상회담의 어정쩡한 결과물에 균열을 보이는 듯했지만 식량지원을 계기로 접점을 찾았다. 한·미동맹의 공조를 토대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큰 틀은 북핵 문제를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었고 앞으로도 결코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 인도적 식량지원도 그 연장선상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식량지원 방법의 구체적인 검토에 착수했다. 국제기구를 통한 공여, 정부 차원의 직접 제공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관철돼야 할 원칙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점이다. WFP는 북한이 올해 136만t의 식량 부족 사태를 겪게 되며 그 피해는 어린이 등 취약계층에 집중될 거라고 전망했다. 무고한 민간인의 절박한 사정을 헤아리는 인도적 지원에 인색하게 대응할 이유는 없다.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가 2017년 의결했던 800만 달러에 얽매이지 말고 실질적인 도움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그것은 철저히 인도적인 지원이어야 할 것이다. 대북 제재를 훼손하거나 에두르는 편법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치밀하게 관리돼야 한다. 국제기구와 공조해 지원품 사용에 대한 검증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지원 규모는 파격적이되 그 성격은 제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기 바란다. 북한은 이를 하노이 회담 결렬 사태의 돌파구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적극 수용하고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는 것이 현 국면에서 북한이 손에 쥘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다.
[사설] 대북 식량지원, 제재 틀 안에서 파격적으로
입력 2019-05-09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