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올해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 시상식.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인 이상재(52) 나사렛대 음악학과 교수가 클라리넷으로 ‘어머니 은혜’를 연주했다.
어머니 조묘자(79) 여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의 연주를 들었다. 아들이 온갖 고생을 하며 공부하고, 자신이 동분서주하며 뒷바라지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 교수는 일곱 살 때 집 앞에서 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신을 다쳤다. 사고 후 3년간 9차례 큰 수술을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들에게 사탕을 건넸더니 이런 말이 돌아왔다. “엄마, 사탕 껍질이 안 보여.”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망막이 손상됐던 것이다. 열 살 무렵 아들은 작은 빛조차 감지할 수 없게 됐다. 그래도 어머니는 절망하지 않았다. 아들이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은 초등학교 때 노래 경연 대회에 나가 입상을 했고 현악 합주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음악을 가까이했다. 중학교 때는 밴드부에서 활동했다.
이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악 합주를 하면서 클라리넷 소리에 매료됐다. 열네 살 때 클라리넷을 처음 손에 들었는데 그게 40년째 이어지고 있다”며 웃었다. 대학 입시를 거쳐 중앙대 음대에 진학했다. 그는 “그때는 장애인 특례 입학이란 것도 없었고 정말 천신만고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모든 게 다 난관이었다”고 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미국 피바디 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시각장애인 최초였다.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하트챔버 오케스트라도 만들었다. 그 사이 결혼해 두 딸도 낳았다. 이 교수는 “어머니는 내가 뭔가 하고 싶다고 하면 온 힘을 다해 뒷바라지해주셨다. 음대에 간다고 할 때도, 혼자 유학 간다고 할 때도 ‘너라면 할 수 있다’면서 언제나 믿어주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어머니의 믿음이 나를 키웠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는 아들의 말에 조 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는 “너무 잘 자라줘 내가 고맙다. 집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고 내가 크게 해준 것은 없었다. 본인이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으며 공부했다. 아들 덕에 이런 큰 상도 받고 내가 더 고맙다”며 기뻐했다.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박덕성(91)씨, 나태주 시인의 아버지 나승복(93)씨,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의 어머니 최석순(82)씨, 국악인 서춘영·서은영·서진희의 어머니 김정순(68)씨 등도 이날 함께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을 받았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시상식에서 “이들 헌신적인 어버이들이 있었기에 훌륭한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축사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