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 해녀와 우뭇가사리

입력 2019-05-11 04:03

매년 5월은 제주 해녀들에게 가장 바쁜 때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해조류가 풍성해지는데 이때가 우뭇가사리 채취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이 우뭇가사리가 녹아내리기 전에 서둘러 채취해야 한다. 우뭇가사리는 물속에서 손바닥 크기로 자라며 개체별로 꼭 쥐면 한 줌 정도 된다. 자홍색이던 우뭇가사리는 말리면 미역 색과 비슷한 검은색으로 변하고 이 우뭇가사리를 물에 끓여 식히면 우무, 또는 우무묵이라고 하는 묵이 된다. 제주말로는 ‘우미’라고 한다. 우무는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와 미네랄이 풍부하다. 가늘게 썰어 콩국, 오이냉국에 말아 먹는다. 응고력이 강하고 수분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어 양갱, 젤리 등 식품 가공에 이용되고 일부 의약품, 화장품의 필수 원료가 된다.

우뭇가사리는 바다에서 채취한 뒤 상하기 전에 빨리 말려야 한다. 햇볕과 바람이 좋으면 한나절이면 되는데 수시로 뒤집어준다. 이맘때 제주도 바닷가 포구, 마을 공터, 길가에는 우뭇가사리가 잔뜩 널려 있다. 건조한 우뭇가사리는 수협에서 1㎏에 1만원 내외로 수매한다. 6월 중순 수매할 때 30㎏들이 포대에 넣어 내놓는데 한 포대면 30만원이다. 부지런한 상군 해녀는 50포대 이상을 하고 나이 든 해녀는 15포대 정도 수확한다. 5월 한 달 우뭇가사리 작업으로 해녀 1인당 4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을 번다고 한다. 연간 해녀 소득의 절반 정도가 되는 셈이다. 기상 조건에 따라 하루 4시간에서 6시간 물속에서 숨을 참아가며 일하는 강도 높은 노동의 보상이다.

지난 1일 우뭇가사리 채취 작업이 시작되는 날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신동 작업 현장에는 마침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던 국제 조류 심포지엄에 참석한 세계 각국 해조류 학자 30여명이 참관하며 작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이 됐는데 해녀 한 명이 오리발을 갖고 오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집에 다시 가서 가져오기까지 30여분 동안 나머지 30여명 해녀들은 작업을 하지 않고 물에 발만 담근 채 기다렸다. 해외 학자들은 이러한 우리나라 해녀들의 공동체 의식에 혀를 내둘렀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업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 해녀들의 철저한 규칙이다. 6일에는 한 해녀의 망사리를 연결하는 테왁 줄이 끊어진 것이 발견됐다. 집에 가서 다른 줄을 가져오기까지 다 같이 10분을 더 기다리다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이 기간 남자들은 ‘우미 마중’을 한다. 트럭과 경운기를 바닷가 해녀길에 세워놓고 선 해녀가 물에서 우뭇가사리로 가득 찬 망사리를 밀고 오면 이를 받아 뭍으로 올리는 일이다. 물을 잔뜩 먹은 망사리는 무겁다. 잠시 갯바위에 두어 물이 빠지면 두 명이 들어 트럭에 싣는다. 해녀가 망사리를 밀어 왔는데 남편이 늦게 마중하면 숨을 참고 있던 해녀에게 호통을 들어야 한다. 우미 마중을 할 남편이 없을 경우 다른 남자가 일정한 대가를 받고 망사리를 받아준다. 대가를 받지 않기도 하는데 그 집 밭일을 해주며 품앗이 한다. 제주도에서 5월은 힘든 일을 하는 해녀의 목소리가 가장 커지는 때다.

하루는 우미 마중하던 남자들이 해녀길에서 돼지머리를 삶았다. 나는 소주병을 들고 찾아가 같이 앉았다. 고기가 삶아지자 10여명이 모여 먹기 시작했다. 해녀들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느새 고기는 다 먹었다. 내가 물었다. “해녀 삼촌들이 나오면 먹을 게 없잖아.” 그들이 대답했다. “할망들은 힘들어 먹을 시간이 없어.” 그들은 서둘러 솥과 버너를 치웠다. 제주도 해녀 남편들은 이렇게 산다.

박두호(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