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중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10일(현지시간)부터 중국산 수입품 관세를 추가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인상 위협이 단순한 압박용 제스처가 아니라 확전이나 파국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최고 수준의 경기 활황에다 취임 후 최고 지지율(46%)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으로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어 9~10일 워싱턴 협상에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불공정관행을 방지할 법제화를 거부하자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6일 중국이 기존 약속에서 후퇴했다면서 태도 변화가 없으면 10일 0시1분부터 수입산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지난주를 지나며 우리는 중국의 약속 위반을 목격해 왔다. 이미 정해진 약속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역 합의 후) 대중 관세 유지 여부를 포함해 중대한 이슈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서는 10일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같은 자리에서 “지난 주말 중국이 상당한 이슈에서 후퇴하는 것이 확실해졌다”면서 “미국은 이미 한 약속에 대해 재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지난해 9월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10% 관세를 10일부터 2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그가 트위터에서 폭탄 발언을 한 것은 미·중 양측이 사실상 합의했던 기술이전 강요 등 무역 불공정 관행 금지 부분을 중국 측이 합의문에 명시하지 않겠다고 번복했고, 이를 라이트하우저 대표로부터 보고받은 뒤 격노한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실제로 중국 협상단은 미국 협상단에 중국 법을 바꿔야 하는 합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측은 법률 개정 문제 대신에 규제·행정 조치를 합의문에 넣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의 추가 양보 요구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중국 협상단이 미국에 추가 양보하는 내용이 담긴 협상안을 내놓자 시 주석이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미국 기업들에 기술이전을 강요하는 중국의 현행 제도를 바꾸도록 요구해 왔다. 기술이전 강요 문제 외에도 중국은 미국이 2500억 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 중인 기존 관세를 조기에 철폐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 왔다. 미국 측은 중국의 자국 기업 보조금 부과와 데이터 이전 규제, 외국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관련 규정, 유전자 변형 씨앗 승인 등에서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협상대표단은 9~10일 워싱턴에서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으며 류허 부총리도 참석할 전망이다. 미국은 추가관세 인상이란 최후통첩의 시한을 10일로 제시했지만 실제 부과보다는 압박용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으로선 급할 게 없는 상황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강경하게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미국은 관세 추가 인상 시기를 못박은 만큼 10일은 무역전쟁의 확전이냐 종전이냐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