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취준생 분신, 심정은 이해하지만… “극단 선택 안돼”

입력 2019-05-08 04:0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 30대 여성이 지난 6일 서울 중랑구 자택에서 분신해 사망했고 부모도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경솔한 선택’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해당 여성 A씨(35)가 장기 취업·공무원시험 준비생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여론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었다. ‘극단적 선택은 잘못됐지만 취준생의 괴로운 심정만큼은 이해간다’는 연민이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이 경기침체와 장기적 취업난에 고통 받는 청년세대, 이른바 ‘잉여세대’(청년세대 전체를 쓸모없는 집단으로 낙인찍는 자기비하적 용어)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줘 공감을 얻고 있다고 봤다. ‘좌절한 인물’에 공감하는 젊은층 세태의 한 단면이라는 것이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7일 A씨를 추모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A씨가 대학 졸업 후 오랜 기간 공무원시험, 시인 등단을 준비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다. 4년간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조모(28)씨는 “나도 지난해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지를 받고 한동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며 “A씨도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는데 잘 안된 것 같아 심정이 이해가 갔다”고 말했다.

청년세대가 양극화 사회에서 장기적 취업난까지 겪고 있는 탓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보는 인물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의 상황에 공감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다른 영화나 책, 웹툰 등을 봐도 잘나가는 청년보다는 어려움을 겪는 청년 얘기가 공감을 얻는다”며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된 ‘아저씨’라는 드라마도 ‘나중에 성공한다’는 주제보다는 체념과 위로를 동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취업 결혼 출산 등 기성세대가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을 이루지 못한 청년층은 본인들을 ‘잉여세대’라고 자조한다”며 “통념상 ‘정상’적인 삶 테두리 밖에 있는 이들에게 공감하는 건 잉여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더 확산되기 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당장은 생명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시선의 변화도 시급하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저자 한윤형 작가는 “제때 취업을 하지 못한 이들은 동창회에도 나오지 못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사실상 이렇게 고통 받는 청년층 수가 절반에 가깝다”며 “이제는 ‘정상인’의 범주를 바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을 ‘그럴 수 있다. 늦지 않았다’며 차분하게 바라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규영 이동환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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