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6 25전쟁 때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검은 뿔테 안경 뒤로 옅은 미소와 함께 “늘 북한을 마음에 품고 계셨던 아버지와 달리 전 그러지 못했어요”라고 고백했다. 목회자였던 선친의 영향을 받아 통일을 위해 기도는 했지만, 자신의 삶과 접점은 찾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성경에 근거한 통일신학, 성경적 통일관을 연구하는 학회의 수장을 맡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총신대 사당캠퍼스에서 만난 안인섭(54) 기독교통일학회장 이야기다. 그는 “남북통일에 대한 잠자던 세포를 일깨워준 건 오히려 1998년 네덜란드 유학 시절 만난 현지인들이었다”고 말했다. 그곳에선 신학대 교수, 목회자, 심지어 성도들까지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에게 먼저 소식을 전해줬다. 북한의 기근과 한반도 위기에 관한 소식이 있을 때는 남북한 국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마음도 전해줬다. 한반도와 상관없는 그들의 진심은 운명처럼 그의 마음을 두드렸다.
부끄러워진 그는 신학자로서 통일문제를 짊어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같은 각성과 고민은 그가 쓴 박사 학위 논문에도 반영됐다. 그는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로마 교회의 가혹한 박해 때문에 유럽 전역으로 흩어져 방황했지만, 조국의 독립과 신앙의 자유를 위해 가열차게 살았다”며 “이들의 뜨거운 삶이 저도 한민족의 평화 통일과 북한 교회의 신앙 자유를 위해 살도록 독려했다”고 전했다.
2003년 가을 한국으로 돌아와 총신대 교수가 됐지만, 통일 선교를 위해 헌신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2006년쯤 주도홍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성경적 관점으로 통일운동을 하는 기독교통일학회를 설립하는 데 같이 하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그 전화 한 통은 통일의 길을 걸어가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된 학회에는 신학자뿐 아니라 북한, 통일, 정치, 외교 등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그는 “설립 13년이 지난 지금도 학회 구성원은 변함없이 함께 연구하고 소통한다”면서 “통일도 이렇게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만큼 치열하게 논쟁하지만, 그 속에서 서로 다듬어지고 동반자의식이 생긴다. 성경적 관점에 따른 통일도 이처럼 상대를 정복하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의 추구에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성경 예레미야 29장에 나오는,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가 된 그들에게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지 말고 오히려 그곳에 정착해 그들과 함께 살며 그곳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도 북한이 가진 한계, 죄악만 보는 게 아니라 성경적 원리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한다면 자연스레 모든 문제와 한계가 하나님 앞에서 해결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