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의뢰인’ 아이들이 눈물지을 때, 적어도 어른이라면 [리뷰]

입력 2019-05-07 00:05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영화 ‘어린 의뢰인’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열 살 난 소녀가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을 죽였다고 자백한다. 믿기 어려운 얘기다. 평소 남매의 애틋한 사이를 잘 알고 있던 변호사 정엽(이동휘)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린 동생 민준(이주원)을 살뜰히 아끼던 누나 다빈(최명빈)이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걸까. 정엽은 숨겨진 진실을 추적한다.

영화 ‘어린 의뢰인’의 내용은 어딘지 낯이 익다. 2013년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극화한 것이다. 의붓어머니의 학대와 친아버지의 방관으로 한 아이가 사망하고 다른 아이는 누명을 썼다가 끝내 밝혀진 사건. 인면수심의 부모가 저지른 악행은 전 국민을 공분케 했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비슷하다. 극 중 다빈·민준 남매는 어른들의 무관심 속에 철저히 방치된다. 아이 몸에 생긴 멍 자국을 보고도 지나쳐버린 학교 선생님, 윗집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를 듣고도 ‘저 집, 또 저러네’ 넘겨버린 이웃 주민. 모두가 방관자일 뿐이다.


정엽 역시 처음에는 남매에게 무심하다. 출세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관심사니까. 하지만 다빈의 자백에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는 걸 직감한 그는 외면하지 않는다. 두 얼굴을 한 새엄마 지숙(유선)의 실체를 파헤치려 분투한다. 적어도 그는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키는 어른’이 되어준 것이다.

영화는 매우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다만 폭력의 잔혹성을 담아내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다.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육체적·언어적 폭력 묘사가 적나라한데, 그만큼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제의식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장규성 감독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이 같은 사건을 접하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영화를 통해 그런 미안함을 전하고자 했다”며 “작업 과정 내내 가장 집중한 건 힘든 시간을 겪은 아이의 마음이었다”고 전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극에 진정성을 더한다. 이동휘는 인물의 변화를 촘촘히 그려내고, 두 아역배우도 대견하게 제 몫을 해낸다. 특히 다빈 역을 맡은 최명빈의 내면 연기는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극 중 유선이 연기한 계모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리만큼 극악무도한데, 이보다 더한 이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담할 따름이다. 22일 개봉. 114분. 12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