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북한의 신형 전술유도무기 발사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발사를 도발로 규정할 경우 그동안 외교치적으로 내세웠던 북·미 비핵화 협상의 성과를 ‘자기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딜레마도 트럼프 행정부의 유화적인 제스처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사진) 국무부 장관은 5일(현지시간) 폭스뉴스·ABC방송·CBS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해 북·미 대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것을 넘어 감싸는 뉘앙스의 발언들을 쏟아냈다.
폼페이오 장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발사체가) 얼마나 멀리 날아갔는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단거리로 여러 발 발사됐다”면서 “중거리 미사일이나 장거리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라는 높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 유예(모라토리엄)’ 약속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관련해 “조사를 해 볼 것”이라면서도 “모라토리엄은 미국에 위협이 되는 ICBM에 초점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쏜 발사체는 ICBM이 아니며, 거리도 ‘단거리’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모라토리엄 위반으로 보기 힘들다고 방어막을 치고 나선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발사체에 대해 ‘미사일’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그것들(they)’과 ‘발사들(launche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ICBM을 발사하지 않은 데 대한 안도감도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그들과 좋은 해결책을 끌어내기 위한 협상을 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ABC방송에서도 “이번 북한의 행동이 북·미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이번 발사체들이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지 않았다”면서 “북한의 동해안에 떨어져 미국이나 한국, 일본에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고 북한을 두둔했다.
그는 또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50%가 심각한 영양실조의 위험에 빠져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은 허용되며, 제재 중에도 북한의 식량 구입은 가능하다”고 당근책을 제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직후 발사를 결정했다”고 러시아에 의혹의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CNN방송은 북한의 발사 당시 위성사진을 공개하며 “발사체가 단거리 탄도미사일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북·러 정상회담 이후에 발사가 이뤄진 것은 더 많은 시험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6일 대북 제재와 관련해 “적대세력들은 어떻게 하나 우리가 가는 길을 돌려 세워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으나 우리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맞불대응을 자제하고 북·미 대화 재개를 요구하고 있어 상황이 더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9∼10일 한국을 방문하는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북·미 대화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대북 식량 지원 등 보다 전향적인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